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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68)끝 모를 고생길
[현태식 칼럼](68)끝 모를 고생길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10.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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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빚은 물경 250만원. 내가 월급을 만원 받던 것을 생각하면 20년의 월급치가 부채인 셈이었다. 한 달 이자가 7만5천원 그러니 월급 7개월치가 있어야 이자를 갚을 수 있게 됐다. 태산이 덮쳐오는 상황이었다. 아치 하면 파산해서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 난관을 넘어야 서광을 맞이할 수 있다.

나는 6시30분이면 점포문을 열었다. 다른 점포는 8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 손님이 오든 말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시30분에 문을 열었다. 왜 그렇게 했나 하면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일보러 가는 사람은 급한 일이 있거나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사람이다. 이 삶이 이른 아침에 타이어 펑크가 나면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 그리고 자전거포마다 다녀도 문이 닫혀있는데 삼천리상사에 찾아왔더니 사장이 직접 펑크를 때워주고 90도로 감사의 절을 해주면 얼마나 감격하고 고맙게 생각할 것인가. 그러면 그는 우리 선전원이 되고 변함없는 고객이 되어주리라 믿고, 이런 분을 위하여 더우나 추우나 일찍 문 여는 수칙을 스스로 정하고 지켰다. 8시가 넘어 종업원이 출근하면 미리 계획했던 일을 지시하고 고객관리차 밖으로 나간다. 아내는 점포관리하고, 출납전표를 작성하고, 세 아이들 돌보고 말 그대로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여섯 살 난 큰딸이 아침설거지를 하곤 하였다. 그릇 씻는 것은 딸이 아예 전담하다시피하였다. 초등학교 다니는 큰아들은 학교 갔다오면 잔심부름을 했다. 제주시내 건설회사에서 사용하는 리어커 공급과 수리는 거의 우리가 독점했다. 온종일 일을 해도 할일은 남아 있다. 종업원이 퇴근하고 보면 내일 팔 잘전거나 리어커가 없다. 조립하기가 바쁘게 팔려나가고 주문이 쇄도하였다.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고 일을 하였다. 밤 12시가 되면 나는 잠자리에 들고, 아내는 그때부터 빨래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먼저 일어났다. 젖먹이는 밤새 보채며 젖을 먹으니 고단하고 피로함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젊음으로 버티고 빚을 갚기 위하여 손발이 부르텄다.

제주도에서는 삼천리를 외면하고 장사를 할 수 없이 되었다. 물건값이 육지도매상의 단가에 운임만 더한 값으로 파니 육지거래보다 더 편하다. 육지에서 목돈으로 물건 구입한 업자는 재고가 나면 낭패본다. 다음 물건하러 갈 때는 목돈을 만들 수 없으니 어디서 빚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와 거래하면 사다가 오래 묵은 물건도 나는 교환해준다. 부속을 외상으로 가져가서 다음에 값을 주도록 하였다. 그러다보니 제주도내 업자는 이제 불량거래자만 제외하고 모두 우리 집 단골이 되었다. 그렇게 악담하던 업자도 친화적으로 돌아왔다.

오는 손님은 모두 받았다. 까다롭게 하는 사람, 물건값을 마구 깎는 사람 가리지 않고 본전만 되면 팔았다. 많이 물건을 소모시켜야 공장에서 인정해준다. 공장에서 인정받은 것은 이익이니까.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도일주를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으로 돌아 서귀포에서 5·16도로로 돌아오고 다음날 서쪽으로 출발하여 5·16도로로 오는 것이다. 여름에는 괜찮으나 겨울에는 찬바람이 몸 속으로 스미고 무릎을 마비시킨다. 이것이 무릎관절병이 깊어진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주중 하루는 제주시내 업자를 돌아본다.

거래처를 돌아볼 때는 어느 점포에서 몇 분 걸릴 시간을 정하고 이 계획에 의하여 움직여야 예정코스를 다 돌아볼 수 있었다. 또 주중 하루는 큰 건축회사를 돌아보거나 관공서 입찰에 참여한다. 그리고 보름에 한번씩은 육지로 나가 공장을 돌아본다. 부산, 대구, 서울에 있는 공장들을 하루에 다닐 때도 있다. 그러니 시쳇말로 죽을 시간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서 밥먹는 것 외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참 이상하다. 부채를 갚으려고 노력하면 수중에 항상 돈이 있다. 가령 만원을 갚기 위하여 백원, 이백원이라도 모으면 만원이 되는 동안 수중에 돈이 있게 되고, 만원을 갚고나도 몇 푼이라도 남아 있다. 그러니 빚을 부지런히 갚으려는 사람에게는 항상 돈이 있다. 백원 갖고 빚 갚냐, 쓰고 보자 하는 사람은 항상 돈이 없다. 만원 이상이 들어와야 빚을 갚겠다니 작은 돈은 늘 써버리기가 버릇이 되어 빚도 못 갚고 돈도 주머니에 남지 않게 된다. 빚이 있는 사람은 빚 갚을 노력을 하라. 그러면 그대의 주머니에는 돈이 있으리니. 그리고 신용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놀랄 일이다.

딱 1년만에 나는 250만원의 빚을 다 갚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맞다. 전국 어디서나 나를 믿어준다. 그리고 제주도시장도 장악했다. 나를 능가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업자도 있었다. 그러나 한 발 뒤져서는 불가능하다. 공장에 가면 물건을 몇 개씩은 구입하지 못한다. 그러니 최소한 몇 백개 단위로 구입해야 한다. 그래도 시장성이 없어 생산공장 사장님에 대하여 죄송하게 생각한다. 제주사람으로서는 내가 아니면 직거래를 할 수 없다. 나는 몇 백개 단위로 가져오지만 제주에서 소매를 한다면 일년을 해도 못파는 숫자다. 내 창고에서 묵히면 뭐하나 그래서 우량업자에게는 외상으로 배달해주었다. 다른 사람이 나처럼 공장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물건을 팔려고 보니 현태식이가 앞서 그 물건을 외상으로 깔아놓고 있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자기 점포에서 소매해야 되는데 몇 년을 걸려야 한다. 이 짓을 여러번 하게 되면 영락없이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발 늦은 업자는 엄두를 못내고, 경쟁을 포기하고 나와 거래해서 소매업자로 생존하게 되는 것이다. 노력하며 생각하며 앞선 자는 승리한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제주도의 도매업자로 부상했다. “없는 물건은 삼천리상사에서 찾아라. 수리하지 못하는 자전거는 삼천리상사로 가야된다. 질 좋은 제품은 믿을 수 있느 KS마크만 취급하는 삼천리상사에서 구입하라.”하는 말은 소비자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 내 상점에는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일이 많을수록 가족의 고생은 더욱 심해지고 건강도 해치게 되었다. 나는 원래 병약하니 내 아내가 나를 될 수 있는한 휴식을 하도록 배려해 주고 나 또한 재기불능이 되지 않도록 피로가 오면 무리하지 않게 조절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비교적 건강하니 자기 한몸 돌보지 않았다. 내색은 않지만 자기 부모에 대한 제사명절을 모시게 되니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보상하려고 자기 몸을 돌보는 일이 없었다. 북초등학교 앞에 이사온 후 네 번째로 작은딸을 출산하였다. 아내는 출산날도 쉬지 않았다. 저녁에 진통이 와서 조산원을 데려다 출산을 시켰다. 다른 집안의 좀 호강하는 집에서는 한두 달은 몸조리한다. 아무리 자기 몸을 학대하고 시집에서 눈 밖에 난 며느리라도 한 2주일은 몸조리하여 찬물에 손 담그지 않고 궂은 바람 맞지 않게 하고 딱딱한 음식을 먹이지 않는다.

내 아내는 한 사람도 배려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첫 출산 때는 간호해줄 사람 없지, 출산 후에 대한 예비지식도 없지, 그나마 먹을 것까지 신통치 않아서 출출할때마다 생쌀을 씹어먹어서 이가 모두 상하였다. 작은딸을 출산할 때는 점포일이 워낙 바빠서 해산 하룻만에 사무보랴, 빨래하랴, 아이들 식사해주랴 해서 몸이 많이 상하게 되었다. 나이가 좀 들어서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심한 몸살을 한다. 몸으로 천기를 다 보는 것이다. 고생을 해본 사람이 남의 고생도 안다. 딸이 출산 때는 꼬박 2개월을 몸조리시켜서 산후 몸이 아프다는 말이 없고, 며느리도 출산하면 그렇게 몸조리시켜서 몸에 이상이 없다, 지독한 고생과 밤낮 가리지 않은 노력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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