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09:56 (목)
[현태식 칼럼](10)일 속에 묻혀 살다
[현태식 칼럼](10)일 속에 묻혀 살다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4.20 16: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우리는 정말 일을 신나게 하였다. 똥구루마(달구지)로 제주 시내에서 인분을 수거해다 밭에 거름으로 뿌리고 제주읍 중심부의 집 굴목의 불치(재)를 마흔 구루마씩 걷우어다 밭에 뿌리기도 하니 곡식이 잘 되었다. 그 시절에는 화학비료는 아예 없었고 퇴비도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수확량이 좋지 않고, 그렇게 되면 굶게 마련이다. 달구지로 짐도 실어 나르고, 물지게도 지고, 점심구덕(바구니)도 지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시키시면 거절해 본 적이 없다. 결석해서 밭일을 하라거나 땔감을 해오라면 ‘예’하고 순종했다. 학교에 가지못하는 아이들도 있는 판에 살려고 시키시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4·3사건이 일어난 그 해에 어느날 밤 오라동 남쪽에서 경찰과 산쪽 패거리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총알이 상대방을 향해 빗발같이 날아갔다. 나는 먹돌새기 외삼촌댁 마당에서 이 광경을 보았다. 밤이니까 총알 날아가는 것이 반딧불처럼 번쩍이며 상대쪽을 향해 포물선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연동에서 살 때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야 잘 산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공산화가 되어 굶는 일 없고 못사는 사람도 없고 높고 낮은 사람 잘나고 못난 사람 없이 평등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싸움도 산(山)사람이 이겼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나이 들어서야 공산주의 나라가 되면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세뇌 즉 철부지가 받은 지식이 머리에 박혀있어 공산주의자가 이겼으면 하고 바랬던 것이었다. 세뇌교육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군경과 산사람들과의 교전이 있는 후 이튿날이 되면 빨갱이가 몇 죽고, 아군이 몇 명 희생되었다는 소문이 퍼지곤 했다. 그런 소식이 뜸해지면서 산에 갔던 사람들이 군경의 선무공작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귀순하여 내려오니, 이들은 주정공장등지에 수용되었었다가 얼마 후에 고향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나 집이 다 불타버려 살 곳이 없었다. 그래도 주민들은 임시 집단 거주지를 마련하고 돌로 성을 쌓아 끝까지 공격하는 공비. 그 습격과 약탈에 대비해야 했다. 주민들은 번갈아가며 보초를 서야 했고, 경찰관들도 무장을 하고 요소 요소에 주둔했다. 4·3사건은 그러면서 차츰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정드르로 이사간 지 일년 후, 우리는 먹돌새기에 몇 마지기 밭을 사고 집을 짓게 되었다. 어머니의 수단과 능력이 비상하기도 하였다. 그 어려운 사태 속에서도 땅을 살 돈을 마련하셨으니 말이다. 살 집을 짓기 위해 우리는 달구지로 옛 집터에 가서 매일 돌을 실어 오고 산에 가서 지붕 덮을 새(띠)를 베어오고, 진흙을 이겨 축(칸막이벽)에 바르고 퇴기를 엮어 흙을 발라 칸막이를 만든다. 으스름 달밤에도 열심히 일을 하여 어느 정도 집 형태가 갖추어지니 이사를 했다. 안정된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