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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5)공부하는 소년
[현태식 칼럼](5)공부하는 소년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4.0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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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1945년 해방이 되고 일본에서 사촌들도 귀국해서 울타리 하나를 격하여 살게 되었다. 동리에서는 야학이라는 게 생겨서 사촌 누님들이랑 공부하는 붐이 일어났다. 웬만한 아이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나가 공부했다. 방이 많거나 마루가 넓은 집에 모여서 한글을 아는 학생이 선생이 되어 ‘기억, 니은’을 가르쳐 주고 숫자를 익히고 구구단을 외우도록 도와 주었다. 공책도 없고 연필도 귀한 때였다. 어쩌다 마분지(일명 똥지) 몇 장이나 몽당연필이라도 생기면 잘 되었다고 기뻐 날뛰던 생각이 난다. 야학에서 나는 내 또래의 아이들 중에서 비교적 글을 빨리 배워 익혔다. 칭찬을 들으면 신이 났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이야 나이 여덟살에 한글 못 읽고 구구단 못 외는 아이가 몇이나 있으랴마는 그 때는 그것도 대단한 것으로 여겼다.

위로 형님 두 분은 제주시 관덕정 옆에 있는 당시로는 제주도 일등학교인 북국민학교(북초등학교)에 다녀서, 나도 학교 다녔으면 했으나 학교 다니겠다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이웃 마을 오라동에서 공회당을 교실삼아 개학한 오라초등학교(일명 연미학교)에 나를 데리고 가셔서 한글 테스트를 받고 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학교에 가보니 나같이 어린 나이에 다니는 아이들은 몇 안되고 장가간 청년들도 있고 보통 두세 살 위의 형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공부하는게 쉬워서 재미가 있었다. 더욱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은 심한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순간이니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있는 동안엔 쇠스랑이나 곡괭이, 삽으로 텃밭을 일구어 나물, 마늘, 토마토, 고추, 가지 같은 것을 심고 김도 매고, 말과 소를 연못에 몰고 가서 물을 먹여줘야 했다. 공부하는 것처럼 쉬운 게 집에는 없었다.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학교를 간다, 안간다, 부모가 데려간다, 선생님께 부탁한다. 별의별 일을 다 하는데 당시에는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나는 학교 가는 게 좋기만 했고, 밤에도 공부하곤 해서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오라학교는 연동 아이들과 오라동 아이들이 전부였고 그 당시는 최고 학년이 3학년까지였다.

어느날 내 또래 오라 출신 아이와 나는 싸움을 했다. 내 생각으로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싸움엔 소질이 전혀 없었던지 첫날에는 흠씬 두들겨 맞았다. 집에 와서 생각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또 싸움을 걸었다. 엊저녁에 연구했던 권투식으로 치고 받고 해서 간단히 이기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실전이 쉬운 게 아니었다. 더욱이 오라동은 텃세가 심한 동네다. 연동 아이들은 항상 기가 죽어 다녔다. 나와 싸우는 아이는 오라동 아이였고 3학년 선배들이 부추기고 싸움이 시작되면 자기 동네 아이들만 응원할 뿐만 아니라 상대하고 있는 나를 뒤에서 꼭 껴안아 버려서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나의 얼굴을 할퀴어 곰보처럼 만들어 버렸다. 지독히 맞은 것이었다. 그 모양으로 귀가했으니 어머니께서 보시고 이 학교에 다니다간 아이 병신 되겠다고 말씀하시더니 집에 형님들이 다니는 북초등학교에 가셔서 급장을 하고 있는 둘째 형의 담임 한순자 선생님께 청을 드려 이 학교로 1학년 2학기 때 전학했다.

읍내 도시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 입은 옷이 세련되고 모두 똑똑해 보였다. 헤어진 옷에 땟국이 흐르는 남루한 차림새에 촌티나는 내 모양새는 그들에겐 웃음거리였다.

여기에서도 처음 얼마 동안엔 얻어터지는 게 일과였다. 우리 반 급장은 어떻게 사나운지 이유도 없이 뺨을 후려갈기는데 어찌나 아픈지!

우리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4㎞도 넘는 먼 거리인데다 시계도 없다. 어머니께서 새벽에 밥을 지어준다 하시지만 해가 떠오른 후에 조반을 먹게 되니 식사 끝나자마자 얼른 뛰어서 학교에 가도 지각할 때가 많았다. 학교정문에서부터 상급생(주번생)에게 벌을 받고, 학교 운동장 조회가 끝난 후 지각생들이 플려나 교실로 들어가면 출석부에 지각으로 적히고 또 선생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내가 잘했다. 학기말에는 우등상을 받았다. 2학년 때 월반 시험을 치르고 3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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