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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4)엄격하신 아버지
[현태식 칼럼](4)엄격하신 아버지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4.03 16: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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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우리 아버지께서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에 가셔서 노동으로 돈을 벌어와 동네 근처에 밭을 몇 필지 사셨다. 전쟁으로 어려워 일본 사회에서도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없어 많이 실직하는데, 아버지는 밥값을 못하면 큰일이다 싶어 아무데나 가서 일 시켜달라고 하면(주로 철공소) 주인이 얼마의 일당을 원하는가를 묻는다고 하셨다. “일당은 일한 만큼 주시면 되지 어찌 제가 얼마 주시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하면 웬만한 공장 주인이면 일해보라고 하며 취직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일당 따지는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실직자가 우글대는 일본에서 늘 취직하시고 일하셔서 부지런히 모은 돈으로 베두리에 밭을 몇 판이나 산 것이다. 사논 밭에서 농사지어 배도 못채우면 굶어 죽어도 할 수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거였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밭가는 일, 김매는 일, 추수하는 일들은 거의 장남(머슴)과 어머니, 우리 형제들이 도맡아 해야 했다.

아버지께서 왜 그리 심기가 불편하셔서 역정을 잘 내시는가 했는데 이유가 있으셨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다고 해서 아버지는 그때 직장에서 신임을 받아 월급도 올라가고 해서 돈버는데 재미를 보고 또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자신감에 차있을 때였는데 위독하노라 한 아내 때문에 귀국하게 되시고, 당시는 전쟁 말기여서 일본에 건너가는 증명을 받지 못해서 그냥 고향에 눌러앉게 되니 그것이 못마땅해하신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그 때 아버지가 귀국하셔서 낳게 된 자식이 나였다고 하시며 임신했을 때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말씀하시는 품이 부지불식간에 나에 대한 원망 비슷한 말을 가끔 하여 혹시 내가 애물단지인가 생각했었다.

어쨌든 농사짓는 집안이라 아버지와 젖먹이 동생 말고는 노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농사일에는 그덧 마음을 쓰지 않으셨다. 당신께서는 가끔 자전거로 외출을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의 공동목장 조합 일보러 다니셨다는데 무보수로 마을 일을 하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어서 공부를 시켜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큰아버지께만 공부를 시켜 주셨다는 것이다. 큰아버지는 결혼 후 까지도 서당에 다니시면서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이 들어 결혼하셨는데 처가에 갔더니 처남 되는 사람이 한문책을 내어 놓으며 읽어 보라고 하였으나 읽지 못하여 창피를 당하셨던 모양이다. 매우 자존심을 상하신 아버지는 그 여인과는 이혼하시고, 지금의 우리 어머니와 재혼하셨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공부를 얼마나 지독하게 하셨는지 불볕 여름철에 타작하는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하시다가도 잠깐 땀씻으며 쉬는 시간을 낼 때도 찌는 듯한 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고 쓰고, 틈만 나면 공부를 하셔서 몇 년 사이에 한문지식을 많이 쌓으시고, 글씨도 명필이 되어서 동리에선 글씨 잘 쓴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향교에 가서는 한시를 지어 수 차례 입상까지 하고 시조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결국 향교 도훈장까지 하셨고 동리 유지가 되셨다. 어머니와 식구들이 부지런해서 밭을 몇 필지 더 사서 동리에서는 새부자라고들 했었다.

아버지는 “나는 학교 안가도 글을 알고 재산도 일구었다” 하시며 자식들의 공부에는 별반 관심이 없고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셨다. 당신께서는 여섯 살 이후에는 부모님을 못견디게 한 적이 없으며 늘 한 사람 몫의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토를 달면 누구든 혼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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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돌개 2015-04-03 19:37:04
하하
읽을수록 재미가 넘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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