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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2)어린 시절
[현태식 칼럼](2)어린 시절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3.31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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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나는 제주도 제주읍 연동리 132번지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은 베두리 개남두둑 동쪽에 긴 올레가 있고, 그 골목에 대문간이 있는 집 네 가호가 모여 있는 동네다.

한울타리에 할아버지께서 사시는 안채가 있고, 바깥채에는 둘째 숙부가 사시고, 남동쪽에는 작은 숙부가, 남서쪽에는 대문소리가 유난히 삐걱대는 집인데 증조모님과 백부님이 사셨다. 북서쪽에 우리 가족 7남매 열한 명이 사는 초가집이 있었다. 밭 한 필지를 4개로 나누어 아버님, 네 형제 가족이 이웃하여 있었다. 우리 집 열네식구 속에는 머슴 두명이 포함되어 있었다.(동생 셋은 용담동에서 태어났음)

식구 많은 농부의 넷째로 태어난 나는 항시 위에서 눌리고 아래서 받치며 중간에 끼어서 지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하고 우리 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초가집 작은 방에는 이불은 하나이고 그걸 덮는 사람은 형님 둘과 누님과 동생, 나까지 다섯 사람이 끼어들어 등 굽은 새우처럼 자는 것이었다. 개구장이 형제들이 창호지 문을 왜 그리 자주 구멍내놓는지 겨울철에 스며드는 한기는 살을 에이는 듯 했다. 밥을 먹을 때는 큰 남박(나무그릇)에 숟가락 대여섯개 걸쳐서 부딪치면서 밥을 먹어 치웠다. 그릇 밑바닥에 한두 숟가락 밥이 남았을 때에 얼른 숟가락을 놓으며 내빼는 것이 상책이었다. 아차 하면 꼴찌로 남겨져서 설거지 당번이 된다. 우리 집안은 끼니를 거를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놀아서는 안되는 전형적 농가였다. 그래서 나도 어린이었지만 놀틈도 없이 일 속에 묻혀 살았다.

일곱 살 때, 짚신을 삼는(만드는) 일을 해 봤는데, 치선씨, 종학씨(머슴들)는 그렇게 잘 만들어내는 짚신을 나는 왜 그렇게도 잘 못만드는지, 깍내는 것, 차생이질 하는 것, 날 당기는 것, 신창잣는 것(짜는 것) 어느 하나 모양 나게 못했다. 때문에 볼품없는 짚신을 만들어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그 짚신이 나의 신발이 되어 맨발을 면하게 하였다.

겨울엔 게다(일본 나막신)를 신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눈길에 미끄러져 발귀마리(복숭아뼈)가 상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저만치 찬바람이 오는가 하면 발과 손과 귀가 동상에 걸려 고생했다. 굴묵(온돌)이라도 땐 날이면 언(동상) 자리가 가려워서 죽을 지경이고 발의 동상이 짓물러 터져 무명실로 짠 양말에 달라붙으면 좀처럼 떼어지지 않고, 억지로 떼어 내면 살점이 묻어 나와 뼈가 보일 것 같았다. 그 상처가 아직도 번듯이 남아 있다.

또 양말은 뜨개질하여 신었는데 일본에 다녀온 숙모님께 배워 동생의 장갑도 짜서 끼게 한 적도 있다. 어머니께서 물레로 실을 뽑으시면 그 무명실로 부모님의 야말도 짜 드리곤 했다. 처음에는 서툴었으나 나중에는 매우 능숙하게 짤 수 있었다. 내가 짠 양말이 겨울에 내 발을 감싸주는 고마운 물건이었다.

아기는 구덕(바구니)에 눕혀 흔들어 잠을 자야 어머니는 그때야 일을 하실 수 있다. 초여름이나 늦은 가을날 타작 마당질 할 때 아기구덕 흔들라고 시키시면 구덕을 흔드는데 정말 참기 힘든 것은 쏟아지는 졸음이었다. 졸음 때문에 아기구덕 흔드는 것은 자연히 멈추어지고 그러면 아기가 빽빽거리며 울어버린다. 마당질하시던 아버지가 아기구덕을 잘 흔들지 않는다고 무섭게 꾸지람을 했다. 아무리 잠을 깨려해도 눈까풀에 주렁주렁 매달린 잠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매든 욕이든 아랑곳없이 꾸벅꾸벅 졸았다. 잠은 왜 나를 욕먹이려고 심술을 부렸을까? 졸음아! 일곱살 짜리 나를 왜 그렇게 괴럽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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