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22:22 (목)
[자청비](132) 제주에서 만난 돌
[자청비](132) 제주에서 만난 돌
  • 이경아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2.08 10:54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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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아 수필가
이경아 수필가
▲ 이경아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돌덩어리는 조각상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조각가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조각가를 만나지 못한 돌은 그저 돌 일 뿐입니다. 대리석 품은 거대한 채석장이 케잌 뜯어 먹듯 점점 작아지는 돌산을 티비에서 봤습니다. 거대 암석 덩어리는 운반하기 좋은 크기로 가공됩니다. 어느 조각가의 손에 들어가 작품으로 창조될까요. 아님, 고급주택이나 건축 재료로 쓰일까요. 같은 돌이지만 쓰임새에 따라 예술품이 되기도 하고 쓸 일없이 굴러다니는 돌이 되기도 합니다. 두부모 잘리듯 그 단단한 돌들이 재단되어 집니다.

다이아몬드나 금, 자수정, 옥 등등 보석들도 사실 다 돌이죠. 아름답죠. 희귀해서 채취하기 힘들뿐 아니라 소유욕을 일으킵니다. 재테크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돌이지만 그 보석들은 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콩알만 한 유리돌의 가격은 입을 벌리게 합니다.

전에 살던 곳의 초등학교 교정에는 표본 암석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암석의 종류는 생성 원인과 과정에 따라 크게 퇴적암, 화성암, 변성암으로 나뉩니다. 석회암, 화강암, 사암, 철분암, 규암, 편마암, 현무암 등등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용도에 맞게 각각 쓸모가 있더군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은 돌 같지 않게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무암은 제주에 정말 흔한 돌이더군요. 푸근한 웃음을 띤 돌하루방이 있는가 하면 눈을 부릅뜬 하루방 석상이 곳곳에 있습니다. 오래된 돌하루방을 보면 최초의 석공이 궁금합니다. 구멍 뚫린 검은 돌을 갈고 닦아 제주를 상징하는 조각상이 되었습니다. 삼다도의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 이름값을 합니다. 집집의 울타리는 돌담으로 쌓여 있습니다. 구불구불 올레길로 이어 집니다. 비석거리에 세워진 오래된 비석에는 검버섯처럼 돌이끼가 잔뜩 끼어 있습니다. 돌에 새겨진 흐릿한 글을 보며 흐른 시간을 가늠해봅니다. 밭담을 휘돌아가는 검은 현무암들, 그곳에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화산이 폭발할 때 흐른 마그마가 식으면서 공기구멍이 숭숭 뚫린 돌이 되었다죠. 화산섬 제주는 현무암 갯바위가 해안선까지 쭉 뻗어있죠. 검은 제주 검은 바다입니다. 밀려오는 파도는 갯바위에 흰 포말을 분수처럼 터트립니다.

제주의 돌이 정겹습니다. 굴러다니는 조그만 돌도 그 시간이 어마무시하게 나이가 많겠죠. 지구의 지표 아래 천천히 식어서 형성된 화강암은 땅의 주요 구성 요소입니다. 지표면에는 한라산의 화산 폭발로 현무암이 만들어졌습니다. 와글와글 자연이 준 작품들이 지천입니다. 바람이 지나는 구멍을 들여다봅니다. 억겁의 바람을 보내고 막힌 숨구멍을 뚫어줍니다. 모진 바람이 부는 이곳에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를 굳건히 지킵니다.

꺼끌꺼끌한 촉감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걸어봅니다. 돌들의 유구한 세월을 보며 짧은 생을 자각하려 합니다. "일체유심조" 마음먹기 따라 생이 움직일까 용을 씁니다. 생김과 성질이 다른 수많은 돌들을 봅니다. 나는 어떤 돌일까요. 한때 나 자신을 부정하며 지낸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방황하며 침묵 아닌 침묵을 해야 했고, 자기가 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아 실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돋보이려 끌과 정을 대며 아프게 깎아 내렸습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너가 되고 싶어 욕심을 부렸습니다. "모든 건 다 지나가리라" 수없이 되뇌이며 위로를 합니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호흡을 천천히 해보세요. 흰 눈을 이고 있는 한라산을 바라보세요.

햐! 평안해!

화산 폭발 때 그 뜨거움을 견딘, 붉은 화산석도 있습니다. 속까지 탄 돌이 재처럼 가볍습니다. 물에 뜨는 돌이 신기하죠. 스스로 제 자랑이 없습니다. 그저 생긴 대로 놓인 자리가 제자리가 되죠. 자연이 조각한 모습에 눈길이 머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긴 세월의 무게가 그냥 가볍습니다. 허허 웃습니다. 이 돌처럼 가볍게 살아 갈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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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영 2024-02-20 14:58:28
삼다도(三多島)의 제주, 바람은 불어 흘러가고 여자도 세월에 흘러가는데 그 돌은 제주의 첫날부터 오늘까지 그 곳에 있었겠지요.
첫 제주 여행때 하루방의 몸매가???신기하고 정겨워서 두 팔 벌려 끌어 안고 찍었던 사진 또 하루방의 코를 보며 손가락의 위치를 고민했던 기억...그래서 셋째가 아들이었나? 흐흐흐
글 잘 읽고 덕분에 추억여행까지 감사합니다.

루이엄마 2024-02-12 20:17:15
자연앞에서 우리 모두 겸손해집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정주호 2024-02-12 20:13:54
제주에 있는듯 정겨움이 느껴집니다~~

새빛 2024-02-08 20:50:03
길 모퉁이에서 굴러다니는 이름 모를 작은 돌부터 거대한 석상과 돌 탑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이
대단한 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제주에서 흔히 보게 되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이 늘 정겹게 느껴집니다

문성탁 2024-02-08 15:23:58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돌담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새삼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길을 내어주며 상생하는
돌담과 같은 삶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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