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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 (56) 거울(Mirror)
[양순진의 시의 정원] (56) 거울(Mirror)
  • 양순지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0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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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러스 시인
시인 실비아플러스
▲ 시인 실비아플러스 ⓒ뉴스라인제주

거울(Mirror)

실비아 플러스
(Sylvia plath,1932~1963)


나는 은백색이고 정확하다. 나는 편견이 없다.
좋든 싫든 현혹되지 않고,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즉시 삼켜버린다.
나는 잔인하지 않다. 단지 정직할 뿐이다.
사방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신의 눈처럼.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반대편 벽을 응시한다.
그것은 반점이 난 분홍색 벽.
오랫동안 응시한 탓에 그것이 내 심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벽은 희미해진다.
얼굴들과 암흑이 우리를 계속해서 갈라놓는다.

이제 나는 호수다. 한 여인이 고개를 숙여 나를 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나의 역량을 탐색하며.
그러자 그녀는 저런 거짓말쟁이들이나,
양초, 달에게 향한다.
나는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충실하게 비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손을 불안하게 만지작거리며 보답한다.
나는 그녀에게 중요하다. 그녀가 왔다가 간다.
매일 아침 어둠을 대체하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다.
내 안에서 그녀는 젊은 소녀를 익사시켰고,
내 안에서 늙은 여인이 날마다 그녀를 향해 일어난다.
끔찍한 물고기처럼.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화가 로먼 록웰의 '거울 앞의 소녀'를 바라본다. 마음 뒤켠으로 밀어두었던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 <거상 The colossus>과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는다. 영화 <실비아>도 본다. 그녀의 시 '거울'을 해독하기 위해 밟는 나선형 계단처럼.

그리고 더 나아가 버지니아 울프와 에밀리 디킨슨, 전혜린도 불러내 본다. 모두 신화적인 삶을 살다간 예술가들이다. 모두 평범하지 않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보다 열렬하게 일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고 싶어 했으며 뼈와 섬유조직까지도 강해져야 한다고 외치던 그녀들. 그러나 예민한 감성과 우울증으로 자살을 선택해야만 했던 불운의 작가들이다.

이 시 '거울'은 시인이 죽기 2년 전에 쓴 시다. 1960년대에 발표된 시로 실비아의 성격과 운명을 예견할 수 있다.
시인이 보는 거울이 말을 하는 형식의  시이다. 은색인 정확하고, 편견이 없고, 현혹되지 않고, 정직한 거울.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젊은 모습들은 날마다 익사시키고 늙어가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슬픈 그녀를 본다.

거울은 매일 반대편의 벽을 응시한다. 반점이 난 분홍색 벽, 그것을 반복적 응시로 심장의 일부라고 믿게 된다.
  호수가 된 거울. 그녀는 나르키소스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정체성의 혼란이 오고 거짓말과 위선과 오독과 싸우게 된다. 자신의 존재를 극한까지 표현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은 '고양이처럼 나는 아홉 번 죽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다다르게 된다.
거울에게 매일 아침 어둠을 대체하는 건, 그녀의 얼굴이다. 거울에게 젊음을 익사시켰고 늙은 여자가 끔찍한 물고기처럼 파닥인다. 그 지독한 절망이 그녀를 갇혀 버리게 한다.

어쩌면 거울이 시인 자신일지도 모른다.  실비아 플러스는 자신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글쓰기가 자신의 대체물이라 했다.
그녀의 시는 로버트 로월이나 앤 섹스턴의 영향을 받아 시적 소재가 주로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뇌와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고백적으로 드러내는데 그래서 고백파 시인이라 부른다.

  피의 분출은 시다.
  그건 막을 도리가 없다.
         -'온정(kindness)' 중

그러나 고독한 인생의 미로라고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첫 시집 <거상>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죽는 것은,
  만사가 그렇 듯,
  하나의 예술
            - '라자로 부인' 중

그렇게 죽음은 자신의 시를 완성하는 중요한 시어가 되어버렸다.
원하는 것을 향한 집념으로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 시를 길어 올림으로써 인간의 비밀스런 심층의 단면을 파헤치는 시를 썼던 그녀, 사후에 엮은 시선집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된 건 실비아 플라스가 처음이다.

장자가 자신의 거울에 새겨 놓았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늘 자신의 마음 만큼만 세상을 본다. 오직 스스로의  마음이 천지의 마음만큼 커질 때 그때서야 세상과 만물의 마음을 온전히 볼 수 있다. 결국 나의 모든 마음은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역으로 환치하면 '거울은 내 마음이다.'가 된다. 거울이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지만 상생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이미지다.

실비아 플라스는 호수에 잠긴 나르키소스가 되어버렸지만 그의 남편인 영국의 계관시인 테드 휴즈가 그녀의 작품들을 모아 출간하여 퓰리처상까지 받게 된다. 천재란 자신의 거울을 능가해버리는 비극적 요소를 품고 있지만, 영원히 지지 않는 자기만의 별을 품고 사는 불멸의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에 곡을 붙인 캐롤 앤 맥고윈의 'Mad Gils Love Song'(미친 소녀의 사랑 노래)이 울려퍼진다.

  너는 내 상상이 만들어낸 것 같아.
  별들은 푸르고 붉게 왈츠를 추고
  제멋대로 어둠이 빠르게 내려오지.
  내가 눈을 감으면 온 세상이 죽어서 떨어지지.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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