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천양희
가마우지새는 벼랑에서만 살고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삽니다.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은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 공포증도 폐쇄 공포증도 없습니다.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
무섭고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 벗어나기만 하면 빛이 따라올 것 같고 붙잡으면 내 삶이 될 것 같던 아슬아슬한 벼랑. 빛이 머물면 그것이 완전한 내 영역일 것 같던 환몽의 외길. 오랜 방랑 속에 결국 벗어났지만 여기 또한 아득한 벼랑이요 슬픔의 왕국이다.
그렇다. 자유란 행복만을 칭하는 언어가 아니다. 슬픔이 천직이 되었다면 슬픔의 둥지에서 슬픔을 배불리 먹으며 향유하는 것. 그것이 시인의 외길이 아닐까. 인간의 외길이 아닐까.
이 시는 새들이 지닌 다양한 습성을 깔아놓고, 뒤편엔 자신의 길을 고수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시적 대상의 명칭을 이용한 언어 유희가 돋보이는 시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운명을 현실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결국 지나보고 나면 그 자리인 것을.
이 시 속의 화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존적이고 숙명적인 삶을 지켜나가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주체성 회복에 대한 의지가 대단하다. 가마우지새, 동박새, 유리새, 무소새처럼 말이다.
새의 '공중'처럼 자신의 '외길'을 확연하게 공표하고 있다. 그렇다. 지나가고 나면 자신의 외길을 부정했던 시간보다 자신의 외길을 끌어안았던 시간이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날자, 날자, 날자꾸나 외치던 어느 시인처럼 우리도 자신의 날개로 삶의 공중을 마음껏 날아보자. [글 양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