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14:09 (목)
[오롬이야기](35) 편안히 앉은 비바리 같아도 아무나 안 친한 안친오롬
[오롬이야기](35) 편안히 앉은 비바리 같아도 아무나 안 친한 안친오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9.23 2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스크렁이 물결치는 안친오롬 남쪽
▲ 스크렁이 물결치는 안친오롬 남쪽 @뉴스라인제주

서귀포시 동쪽 끝자락, 바다 건너 청산오롬을 바라보고, 바다 건너로 한라산 황혼을 바라보고, 바다 건너로 오조리 바오롬을 바라보는 곳, 그곳이 바로 섭지코지다. 그 북동쪽 끝에 꼬마 신랑 같은 오롬, 붉은오롬이 있다. 파도치는 코지가 깍이고 파여도 결코 울지 않은 요망진(야무진) 작은 사내가 있다면 구좌읍 송당리 중산간, 누구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좀처럼 얼굴을 들어내지 않는 오롬이 있다. 어린 비바리 같이 누군가 기다리는 안친오롬이다.

구좌읍 평대리 비자림로를 따라 알(아래)송당에 이를 쯤 여기서 로타리를 돌아서 오던 길로 1백 미터쯤 되돌아오면 안친오롬이 있다. 송당리 808, 812번지에 있는 작고 이쁜 이 오롬은 낮은 언덕과 얕은 구렁으로 이뤄진 미개방 사유지 오롬이다. 송당 마을 중에 있어서 마을 소들을 들판으로 나가고 들어오기 전 후에 쉬어가기 좋음 직한 곳이다.

지난 봄, 안친오롬은 오차드그래스(목초)가 심겨져 있었다. 봄바람이 불면 휘날리는 푸른 치맛자락이 나부끼고, 그 위쪽에는 돌무꽃 핀 보랏빛 블라우스가 한들거린다. 늦은 가을, 목초가 베인 안친오롬은 누런 벌판이다. 조심히 돌담 울타리를 따라 가노라면 수줍은 비바리 몸매를 보는 듯 아련하다. 피가 심겨져 허리까지 차올라 가로지르기가 어려워 보인다. 남쪽 끝 돌담으로 돌아가니 키 큰 후박나무, 참식나무, 팽나무 사이로 몰쿠실(고령근), 천선과, 팔손이 등이 틈틈이 자라서 바람들 곳 없어 보인다.

보랏빛 아름다운 안친오롬 북쪽굼부리
▲ 보랏빛 아름다운 안친오롬 북쪽굼부리 @뉴스라인제주

이 오롬은 산간마을 알뜨르에 있는데 해발 192m이나 실제 산 높이인 비고는 22m 밖에 안 되고 둘레도 고작 924m로 1km가 채 안되어 높지 않은 언덕 같다. 길 쪽으로는 밭담이 둘려져 있고 주차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디에 오롬이 있는지 정보를 모르면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 오롬은 작아도 어엿하게 스코리아 화산 분석구를 가진 말굽오롬이다.

이 오롬은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진오롬, 안친오롬은 순수한 제주어로 보인다. ‘아진’은 제주어로 ‘앉아있다’는 수동사이며 ‘안친’은 ‘누군가 앉혀놓았다’는 타동사이다. 어떻든 ‘앉아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오롬은 북향으로 열려진 굼부리를 가지고 있는데, 마치 ‘다리를 벌리고 편안히 앉아 있는 비바리 모습이다.

한자로 아친악雅親岳의 ‘아雅는 이쁘다, 우아하다’는 뜻이고 ‘친親은 친하다, 가깝다‘는 뜻이다. 중국어로 편지를 쓸 때 서두에 ‘친아이더親愛的’ 라는 말을 쓴다. 이 경우는 연인이나 아내에게만 쓰이고 친구나 가족에게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아친악雅親岳’은 제주어 ‘아진오롬, 안친오롬’의 음차로 보인다. ‘좌악坐岳, 좌치坐置, 좌치악坐雉岳은 한어漢語로 ‘앉았다’라는 뜻의 ‘앉을좌坐자’를 쓰고 있는 해석된 말이다.

안친오롬 정상에서 동쪽 전경
▲ 안친오롬 정상에서 동쪽 전경 @뉴스라인제주

안친오롬은 두 다리를 벌리고 편안히 앉아 있는 모양이라면 반달처럼 둥그런 방뎅이(처녀의 뒤태를 말함)가 있을 뿐, 봉우리라 할 만한 곳이 없다. 눈이 쌓이면 자연 썰매장으로 쓰기에 딱 좋은 곳이다. 송당리는 25개 오롬이 있고 제주도에서 가장 오롬이 많은 마을이다. 그중에 알선이족은오롬은 비고 21m로 안친오롬보다 1m 높으나 해발로 보면 알선이족은오롬은 291.2m, 안친오롬은 192m이니 101m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안친오롬 남쪽 등성이는 삼나무가 한 줄로 도열해 있다. 동쪽과 서쪽 양편은 모두 밭담이 둘려있다. 그 뒤는 목초가 없어 누런빛이다. 안친오롬의 늦은 봄, 오롬 자락은 푸른빛, 등어리는 누런빛, 굼부리 아래는 무꽃이 피어서 파란빛이 어우러진다. 등성이에 오르면 주위의 크고 높은 오롬들을 올려다 봐야한다. 그래서일까? 안친오롬은 작고 이쁘나 다소곳이 숨어 있어 더욱 정겹고 순진한 비바리 같다.

추분을 한 주 앞둔 9월 중순, 다시 찾은 안친오롬, 남쪽으로는 키 작은 황새풀은 아직 푸른데 오롬등성이에는 ‘스크렁이 깔렸다. 스크렁은 벼과 식물로 강아지풀을 닮았다. ​키는 30~80 cm인데 8~10월에 ​흑자색 동그란 이삭이 달리는데 ‘죽어도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갚겠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진晉나라 위무자가 병 들자 아들 위과에게 자기가 죽으면 후처(위과의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케 하라고 유언한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정신이 혼미해진 위무자는 후처를 순장하라고 유언을 번복한다.

북쪽에서 본 안친오롬 등성이
▲ 북쪽에서 본 안친오롬 등성이 @뉴스라인제주

위무자 사후, 위과는 부친이 첫 번째 유언대로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케 한다. 그 후, 진환공秦桓公이 진晉나라를 공격할 때 위과는 진秦나라 장수 두회와 싸움에 위태할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매어 두회가 탄 말이 걸려 넘어지게 만들어 적장 두회를 사로잡고 승리한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서 “자신이 바로 위과가 재가시킨 서모의 아버지인데 자기 딸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싸움터에서 풀을 묶어 두회가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고 한다.(Daum 백과 고사성어대사전, 김성일)

‘아진오롬’은 저절로 앉은 것이라면 ‘안친오롬’은 누군가 앉혀놓은 것이다. ‘누가 앉혀놓은 것인가?’ 가을채비를 서두르는 들판은 가을향연을 준비하는 듯하다. 안친오롬은 스크렁이 물결친다. 뜨겁던 햇빛이 열이 빠지고 산들바람이 분다. 벌초를 앞두고 있다. 조상의 묘에 풀하나를 베면서도 조상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말하는 듯하다. 낮은 안친오롬 언덕에 가을이 오는가 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