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14:09 (목)
[오롬이야기](27) 번영로 대로변에 쉽게 가 볼 수 있는 ᄉᆞ미오롬
[오롬이야기](27) 번영로 대로변에 쉽게 가 볼 수 있는 ᄉᆞ미오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8.17 18: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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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초봄 나목들이 치솟아 오르는 세미오롬 등반로 입구
▲ 초봄 나목들이 치솟아 오르는 세미오롬 등반로 입구 @뉴스라인제주

일찍이 제주오롬을 기록한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산천(山川)’조에 표기된 오롬은 제주에 82개 오롬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주목 43개, 정의군 24개, 대정현 15개이다. 그 중 ᄉᆞ미오롬은 하나로 한자로는 사미악思美岳이라 표기하나 음차 했을 뿐이다. 미오롬→ 미오롬에서 아래아ㆍ가 사라지며 세미오롬으로 변형 된 것으로 보인다. 요즘 들어 도래인, 관광객들이 ‘샘이>새미’로 잘못 표기하며 점차 본디 제주어에서 멀어지고 있다.

제주에는 50여개가 넘는 샘이 있는 오롬이 있는데(다른 조사에서는 37개라 하나 이는 잘못 된 조사로 보인다) 그 중에 ‘ᄉᆞ미’라는 이름이 붙은 오롬은 아라동/ᄉᆞ미오롬, 대흘리/ᄉᆞ미오롬, 송당/거슨ᄉᆞ미오롬, 봉개/안ᄉᆞ미오롬, 애월고성/산ᄉᆞ미오롬 등 5개가 있다. 조천읍 대흘리에 소재한 ᄉᆞ미오롬은 해발 421m, 비고 126m, 둘레 1988m, 261,938㎡로 작지 않은 오름이다,

제주→표선 간 동북대로인 번영로를 따라 동으로 가다보면 회천동 주유소를 지나 조천읍 지경으로 들어선다. 빛 좋은 날이면 눈부신 동녘 좌우에 두 개의 오름이 보이는데 우측에 우뚝 솟은 바농오롬과 좌측에 옹크린 ᄉᆞ미오름이 보인다. 번영로 상에서는 남쪽에 머리를 둔 살쾡이가 북쪽에 꼬리를 두고 동쪽으로 웅크린 모양이다. 남서쪽 대흘남길에서는 남쪽의 손잡이가 있는 동그란 표주박 모양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번영로 상 대천동에서 서쪽 제주시를 향하여 가다보면 우측에 보이는 ᄉᆞ미오롬은 구부러진 호박처럼 길게 누워 있다.

세미오롬 동쪽 더덕밭에서 본 세미오롬 모습
▲ 세미오롬 동쪽 더덕밭에서 본 세미오롬 모습 @뉴스라인제주

ᄉᆞ미오롬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우진제비, 거슨ᄉᆞ미오롬, 부대오롬, 부소오롬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장마 끝에 낯을 씻은 한라산이 푸르고 넉넉하게 하게 보인다. 앞으로는 바농오롬, 꾀꼬리오롬, 큰지그리, 족은지그리 등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삼양오롬, 제주시내, 사라봉까지 훤히 보인다. ᄉᆞ미오롬은 해안오롬인 함덕 섬오롬(서우봉), 삼양오롬 등의 해안오롬과 바농오롬, 지그리오롬등과 함께 중산간에 있다.

ᄉᆞ미오롬은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말굽형 모양의 화구가 보인다. 오롬은 주차장에서 주차하고 남쪽 등성이를 타고 오른다. 평평한 등성이를 따라 걷다보면 동쪽 오롬 정상에 산불감시초를 만나게 된다. 거기서 계속 북서쪽으로 내려가면 가파른 등성이를 따라 내려가게 된다. 8.15일 아침 6시, ᄉᆞ미오롬을 오르는데 조천읍에서 풀을 말끔히 베어서 좋다했더니 오롬등성이에서부터는 베지 않아서 여름 한 철 자란 억새풀이 아침 이슬을 머금어 아랫도리를 적신다.

오롬 입구에서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우슬牛膝이 정상에는 지천이다. 관절염이나 뼈아픈데 좋은 약이다. 중턱부터는 보랏빛 기둥을 세우고 피는 맥문동이 꽤 보인다. 토혈이나 폐결핵 약으로 쓰이는 풀이다. 정상에는 당귀, 키 큰 구릿대 마른 가지가 보이는데 아래를 보니 연두빛 어린잎들이 자란다. 강원도에서는 장아찌도 담근다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먹지 않는다. 만주에서 나물 캐러 갔을 때 묵나물로 먹는다고 꺾는 것을 본 만주사람들은 “독초인데 큰 일 난다”고 말 하던 게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옛날에는 민방약으로 나물로 먹었으나 지금은 찾지 않으니 모두 별 볼일 없는 잡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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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을 찾아 헤매던 중에 북쪽에서 본 세미오롬 모습
▲ 우마도 찾지 않아 버려진 오롬자락의 보잘 것 없는 연못 @뉴스라인제주

ᄉᆞ미오롬에는 여름철 3종 넝쿨 꽃이 모두 보인다. 큰 나무 위를 기어오르는 녀석들 중에는 에 하얗게 꽃 피우는 두레기(하늘타리)는 황달, 당뇨, 피부병에 쓰이는 약이다. 사위질빵의 질빵은 등짐 질 때 쓴다. 그런데 사위질빵이라니? 백인여자 눈썹 같은 하얀 꽃, 줄기는 칡이나 동아줄처럼 질빵으로 쓰기엔 어림도 없이 야리야리 하다. ‘소도 먹지 않으니 시늉만 피우는 사위 같다’고 붙은 이름이다. 계요등鷄尿登은 닭 오줌냄새가 난다가 붙여진 이름인데 닭(鳥類)은 오줌을 눕지 않고 똥+오줌으로 나온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똥시屎자를 써서 ‘계시동鷄屎桐이라 쓰는데 계요등(동) 보다는 더 바른 뜻인 것 같다.

지난봄, 재스민향기 같던 꽤꽝낭(가마귀쥐똥)은 푸른 열매를 맺는데 예덕나무는 뒤늦게 꽃을 피운다. 소사나무, 윷놀이나무, 찔레, 천선과, 들뽕, 구지뽕, 으름, 다래 등은 한창 열매가 자라는데 야생 참밤나무는 벌써 작은 가시 밤송이를 떨구고 있다. 중턱에 가득했던 상수리, 도토리나무는 푸른 잎이 무성한데 제주가 원산인 자귀나무, 머귀나무, 떼죽나무들이 심겨진 소나무, 삼나무, 편백나무들과 같이 고목을 이룬다. 습기진 곳이라서 거슨ᄉᆞ미오롬과 같이 관중과 같은 고사리류도 보인다.

제주에서도 ᄉᆞ미오롬은 다우지역이라서 그럴까? 골짝 계곡에는 구릿대도 있고 제주사람들이 즐겨먹는 산나물인 양하 무리도 보인다. 여기서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산미나리를 찾았다. 경상도에서는 그랑대라 하는데 그랑은 경상도말로 계곡이란 말이다. 백두산 기슭에 산나물을 캐러 갈 때 산미나리를 꺽어 된장에 찍어먹던 생각이 난다. 보랏빛 물봉선, 파란빛 닭의장풀, 분홍빛 며느리밑씻개도 한창이다. 지난 초봄에 아내와 달래, 냉이, 쑥을 캐던 곳이다.

우마도 찾지 않아 버려진 오롬자락의 보잘 것 없는 연못
▲ 샘을 찾아 헤매던 중에 북쪽에서 본 세미오롬 모습 @뉴스라인제주

동북쪽에 샘이 있단 말을 듣고 샘을 찾으려고 오롬 자락을 헤매던 중 엄청 큰 더덕 밭을 보았다. 노루 한 마리가 더덕을 캐먹다가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쏜살같이 도망친다. 오롬을 돌고 돌아 12번을 찾아도 샘을 찾을 수 없었다. 8.15일, 아침에도 못 찾아서 저녁에 다시 찾아 헤매다 날이 저물어 포기하고 귀가 하고 있었다. 동네에 은퇴한 선생님을 뵈었는데 내일 아침에 다시 오면 안내해 준다고 하여서 뒷날 아침에 동행하여 겨우 샘을 찾았다.

박선생님은 대흘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와산리 쪽으로 가자고 하였다. 바로 우회전하여 차를 세우고 농로를 따라서 오롬 자락을 따라 가는 중에 드디어 샘을 찾았으나 실망하였다. 샘은 성불오롬, 거슨ᄉᆞ미같이 솟는 물이 아니었다. 근처 밭들이 참흙인 것처럼 참흙이라서 물이 고인 것이다. 네다섯 평:13.2~16.5제곱미터나 됨직한데 옛날 식수로 쓸 때는 관리했겠지만 억수 같은 장마 끝에도 고인 물은 두 뼘 안 되어 보인다. 어쩌면 옛 사람들이 심었을 뽕나무 삭은 가지, 나뭇잎들이 떨어져 더 지저분해 보인다.

억새가 휘날리는 가을이나 굼부리에 옷 벗은 나목들이 하뉘바람에 떨며 춤추는 정겨운 ᄉᆞ미오롬, 그런데 나는 왜 슬픈 생각이 드는가? 어쩌면 ᄉᆞ미오롬의 쇠퇴한 샘처럼 점차 고향을 버려두고 떠나는 제주본토인의 모습과 겹쳐져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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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2020-08-17 22:03:33
오롬이야기를 쓰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 하지만 정말 어렵고 아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연재에 기다림이 크다는 독촉에 힘을 얻어 쓰고 있습니다. 애독해 주심에 감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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