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14:09 (목)
[오롬이야기](21) 산발한 산중 야생녀, 섬듯한 오롬 여문영아리
[오롬이야기](21) 산발한 산중 야생녀, 섬듯한 오롬 여문영아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7.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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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남조로 남쪽에서 본 여문영아리
▲ 남조로 남쪽에서 본 여문영아리 @뉴스라인제주

제주시에서 번영로를 타고 가다가 조천읍 지경에 이르는 4거리에서 우회전하는 곳, 거기서 한라산 동쪽 자락을 가로질러 서귀포시 남원읍으로 나가는 중산간도로가 있다. 남조로南朝路이다. 그 중간 우측에는 붉은오롬과 사려니 숲, 좌측으로는 여문영아리, 물영아리가 있다. 남조로 상 조천읍⦁와흘리~표선면⦁가시리~남원읍⦁수망리 경계를 이루는 바로 그곳에 두 오롬이 있다. 동북쪽은 여문영아리와 동남쪽은 물영아리다.

물영아리는 해발 508(표고 128)m인데 여문영아리는 해발 514(표고 134)로 비슷한 높이다. 그러나 물영아리는 원형 분화구에 물을 담은 화구호가 있으나 여문영아리는 얼른 보기에는 물영아리와 비슷해 보이나 동남쪽 높은 봉우리가 서북쪽으로 기울어진 말굽형으로 열려있다. 동남쪽 높은 쪽은 말굽형굼부리가 패여 있고 중간지대를 넘어서 북쪽으로는 더 깊은 말굽형태로 열린 굼부리가 있다. 한글 ‘ㅌ자’ 형태인 포크모양이다.

여문영아리의 ‘여물다’는 말은 ‘물이 고이지 않는 단단한 곳’을 말한다. 여기에 두 개의 열린 굼부리가 있으니 복합오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조로 상에서 동쪽을 향하여 보거나 물영아리 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보면 높은 봉우리가 보이니 외관상으로는 비슷해 보이나 오롬을 올라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동남쪽이 높고 서북이 낮게 열려 있으니 구조상으로도 물이 흘러내려서 여문(단단한) 땅이 될 수밖에 없다.

물영아리는 서귀포시 남원읍⦁수망리水望里의 옛 지도(탐라도/1600년경, 탐라지도/1709, 제주3읍도총지도/1700년경)나 문헌(동국여지승람/1481, 탐라지/1653)상에 나타나 있다. 동네에서는 서남쪽으로 흐르는 ‘물ᄇᆞ라 내川’가 있어서 ’수망천水望川‘이라고 표기한 것이 지금껏 불리고 있다. 여문영아리는 표선면⦁가시리로 남원읍⦁수망리의 물영아리와 마주보고 있다. 두 오롬이 사이에는 ᄆᆞ쉬(말과 소)를 먹이던 넓은 촐앗(牧草地)이 있다.

여문영아리 북서쪽으로 열린 굼부리
▲ 여문영아리 북서쪽으로 열린 굼부리 @뉴스라인제주

물영아리 남서쪽 전망은 막혀 있으나 여문영아리는 전망이 트여 있어 남동쪽으로는 물영아리가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한라산과 붉은오롬, 사려니 숲에 속한 오롬들과 멀리는 한라산 중턱의 조천읍⦁교래리, 제주시⦁봉개동에 속한 오롬들이 보이고 남동쪽으로는 물영아리에서 보이던 오롬들과 대한항공 연습비행장, 녹산장 유채꽃-왕벗나무길도 보인다.

여문영아리에서 동서남북을 둘러본다. 벌판 가운데 어머니처럼 누었거나 누이들처럼 곱게 솟은 오름 밭들을 보니 표선면 제일의 오롬부자인 가시리 일대 뿐 아니라 표선면과 남원읍, 조천읍, 구좌읍 일대의 오롬들도 보인다. 가시리는 송당리(25개), 봉개동(22개), 교래리(17개), 광령리(15개)에 이어 봉성리와 함께 공동 5위의 오롬 부자다.

4월 초, 여문영아리를 탐사하려고 갔다가 두 차례나 길을 잊어 헤맸다. 올라가는 길을 따라 정상 굼부리를 한 바퀴를 돌려 했더니 굼부리가 도중에 사라져 버렸다. 고사리 꺽던 길을 따라 나오려니 찔레가시 넝쿨에 옷이 걸렸다. 야생녀가 잡아 끄는 것 같아서 움찔하였다. 겨우 길을 찾아 나오는 듯 했으나 다시 길이 사라져 버려서 1시간 반을 헤맸다.

여문영아리 오롬길은 야생, 그 자체이다. 저대로 자란 잡목과 소나무, 삼나무 조림목이 욱어졌는데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고 온갖 넝쿨이 모자를 벗기고, 옷깃을 잠아 당겨서 혼자 다니기에 섬뜩한 곳이다. 열린 굼부리에는 제주 토종나무들로는 고목이 된 떼죽나무들이 특히 많은데 늙어서 선체로 죽은 나무, 죽어서 부러진 나무들이 발길에 걸린다.

야생녀 같이 섬뜩한 덤불 속 굼부리
▲ 야생녀 같이 섬뜩한 덤불 속 굼부리 @뉴스라인제주

북서쪽 벌판 주위 묘들은 모두 번호가 매겨 있고 이미 이장해 간 곳들도 여럿이다. 이제껏 자유롭게 잠들고 너나없이 ᄆᆞ쉬馬牛 먹이던 촐앗(목초밭)인데 대체 누가 임자 없는 땅이라고 팔아먹었을까? 중국인들에게 팔려나간 땅들은 또 얼마인가? 자기 속만 채우는 나쁜 머리 쓰는 인간들과 시市나 도道에서 팔아먹은 땅은 또 얼마인가?

앞날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타이완 원주민들이 300년전 타이완을 정벌하여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유럽 해적들을 몰아내고 비워진 타이완에(실은 폴리네시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바다건너 푸젠성福建省 사람들을 데려다 채워놓았으니 이들이 오늘날 자칭 ‘대만인臺灣人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70년 뒤에는 이들도 중국공산당에게 쫓겨난 장개석 군대에게 무참히 짓밟혀 피 흘린 위에 자유중국이 세워졌다.

타이완 원주민들은 자기 땅을 잃고 산으로 피하여 고산족이라도 되었지만 불쌍한 제주인들은 도망할 산 마져 빼앗겼으니 산으로도 못가니 바다에 빠져 죽던지 또 다른 무인도를 찾아서 떠나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나는 벌써 무인도로 떠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재주 원주민인 폴리네시안을 박멸한 제주인의 죄의 결과인지 모른다.

여문영아리에서 길 잊어 헤매듯 제주는 지금 길 잃은 사람처럼 갈 바를 모른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좋다”고 쏙쏙 빼먹은 이들은 누구인가? 언젠가는 중국 변방이나 타이완 산지의 소수민족처럼 쫓겨 날 터인데 산으로도 쫓겨날 곳도 없으니 육지자본에 몸을 팔아 노동하는 슬픈 족속이 될 것이다. 과거 제주가 겪어 온 아픔과 눈물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왔다. 아! 자유 잃은 해중도海中島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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