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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11)6·25 전쟁 발발
[현태식 칼럼](11)6·25 전쟁 발발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4.22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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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먹돌새기 집에 이사오자 6·25사변이 일어났다. 어떤 이는 폭도에게 맞아 죽고, 어떤 이는 군경에게 맞아 죽고, 좌익사상에 물들었다고 감시하는 눈초리를 피해 어떤 이는 밀항해서 일본으로 달아나고, 더러 남은 젊은 사람들은 태극기나 흰 띠를 어깨에 두르고 머리띠를 동여매고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태극기 걸어놓고 천세만세 부르세···········나라님께 병정되기 소원합니다.”라는 군가를 부르며 충성을 맹세하며 훈련소에 입대하느라 법석이었다.

피난민들이 한길 가득히 몰려와서는 제주도 전역으로 흩어져 갔다. 군인부대가 초등학교를 주둔지로 이용하고 장갑차와 군용차들이 비포장 도로를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며 질주하였다. 살육과 파괴로 나라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산주의자 김일성의 만행이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에도 피난민들이 계속 들어와 살았고 서울말, 이북사투리가 제주바닥에 넘쳐났다.

3·4학년 때 교실은 군인들의 차지가 되고, 우리 반 아이들은 노천에서 공부했다. 때로는 담임 선생님댁 마루방에서, 어떤 때는 서부두 방파제에서, 어떤 때는 삼성혈에까지 군가를 부르며 행진하여 가서 소나무 그늘에서 공부를 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서부두 방파제를 거닐 때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책과 공책을 펴 놓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그 때는 거기에 칠판을 놓고 공부를 분명히 했으니 사람의 환경적응력은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한다. 그런 때가 다시 오면 지금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텐데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되었다. 염량세태에 민감하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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