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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9)밀고에 시달리는 삶
[현태식 칼럼](9)밀고에 시달리는 삶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4.17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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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외삼촌 댁에서 움집 생활을 하면서도 무고하는 사람 때문에 우리 집안 식구들은 정말 불안한 생활을 하였다. 경찰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이 무고를 해대는 바람에 목숨을 부지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중산간 마을에서 해변가로 내려왔으므로 산사람이나 붉은 사상 가진 사람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안전하였으나, 경찰에 빨갱이라고 고발하겠다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 우리를 협박하고 겁을 주면서 양식을 뜯어가기도 하고 고구마를 한 가마니씩 빼앗아가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의 바로 아랫동생인 셋째 아버지는 식구가 그리 많지 않아서 우리와 같이 피난오게 되면 식량을 나누어야 하고 집도 없으니 생활하는 것도 불편할 것이라 여기셨는지 우리와 떨어져 사수동으로 가셨다. 할아버지와 숙부께서 사수동으로 내려간 것을 트집잡고 ‘동생 한 사람은 어딜 갔느냐, 마을의 빨갱이에 대한 정보를 내놓으라’며 정보를 주지않은 부모님을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계속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 때마다 보리쌀을 주든지 고구마를 주든지 해야 했다. 이 정도 토색질로는 만족하지 않았던지 경찰 앞잡이 한 사람이 하루는 작은아버지가 의심스럽다고 경찰에 밀고해버려서 잡혀갔다. 이를 빼내어 오느라고 우리 어머니는 정말 눈물나는 고생을 하셨다.

사수동으로 내려가신 숙부는 이발관이 없는 동리여서 수염도 머리도 깎지 않은 채 그냥 지내시다가, 누군가가 산에서 내려온 ‘폭도’라고 손가락질 해버리니 경찰서에 잡혀가서 아무 죄도 없이 집단학살지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

사태가 잠잠해진 후 숙모가 앞장서서 아버지 형제분들과 같이 몇날 며칠을 찾아 다니셨는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 시체들 속에서 입고 간 옷으로 구별하여 시신을 찾아다 우리 밭에 몇 해를 가매장했다가 괭이오름 남쪽으로 이장하였다.

한편 매형은 산으로 가고 임신한 누님은 우리와 같이 시내 용담동 먹돌새기로 내려왔는데 마침 남의 집 뒷방에서 해산을 하게 됐다. 춥고 배고픈 것을 견디는 것보다 아이가 울면 순경이나 밀고자에게 발각되지나 않을까 마음 졸이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 남편의 행방을 대라면서 잡혀가면 그 날로 불귀의 객이 되기 십상이니 경찰에 들키지 않기 위하여 아기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면서 숨어 사는 것이 참기 어렵고 하루 하루가 지옥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기가 울면 입을 틀어막아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숨막히는 고통의 세월을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

어느날 우리 가족은 용담2동, ‘정드르’ 지금의 서초등학교 후문 근처로 이사했다. 남의 집 바깥채에 세를 든 것이다. 안전한 곳으로 이사했으니 어느 정도 무고자로부터의 위험에서는 벗어난 것 같았다. 그러나 열두 식구가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여걸풍의 어머니께서 밤낮 없이 맹렬한 활동을 해주신 덕으로 우리는 살아난 것이다.

어머니께서 시골로 돌아다니시며 쌀 장사, 돼지 장사도 하시고 밭 농사도 하시며 돈을 버셨기에 그 많은 식구가 먹기도 하고 학비도 주셔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연동에서 내려오는 해에 밭에 무를 파종해 두고 내려왔는데 그 무를 뽑아다 팔아서 돈도 만져보고 식량도 사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이백미터쯤 남쪽에 서문파출소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통행인을 검문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파출소에 가겨서 무를 가져오지 못하면 열두 식구가다 죽게 된다고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담배까지 사다주면서 애원하니 불쌍하다고 마차 두 대가 가는 것을 묵인하여 주었다. 어떤 때는 무장한 순경이 중뎅이골(오라3동)까지 호위해 주기도 하고 무를 싣고 오면 순경이 무 사가라고 선전까지 해 주었다. 그 무 덕분에 목숨을 잇고 큰형님은 중학교, 우리들은 북초등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 살아나려고 하니 우리 밭이 마침 연동마을 안에 있는게 아니고 연동사람들의 눈에 잘 안띄는 삼무공원 북측에 있었으므로 무를 계속 캐어올 수 있었지 마을 안에 있었더라면 우리를 반동이라 지목해온 터라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우신조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는 격언의 본보기가 아닐까. 어머니의 식구를 살리시려는 강한 모성이 우리 식구들을 살리신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 식구들은 여덟살, 아홉 살만 넘으면 일을 했고 저녁에는 각지불(석유등반) 밑에서 몇 시간씩이라도 공부한 덕에 그렇게 결석, 지각이 많으면서도 성적은 괜찮았다. 둘째 형은 반에서 급장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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