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9 20:22 (목)
[연륙교](5) 집을 짓는 이유
[연륙교](5) 집을 짓는 이유
  • 왕준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1.30 05:09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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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준자 시인
왕준자 시인
▲ 왕준자 시인 ⓒ뉴스라인제주

 눈 뜨는 아침.
백미러로 보이는 산방산은 경이로웠다.
 둥그런 산 주변을 감싸고 있는 푸르스름한 빛의 아우라,
 오직, 떠 오르는 태양에 발 하는 산방산 하나만이 보였을 뿐이다

 지나는 자동차도 없는 새벽 길을 달렸다.
 집 짓는 곳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진 산방산 온천을 나와 현장으로 가는 중이다.

 하루 만원 정도면 온천을 즐기며 잠을 잘 수 있는 24시 찜방에서,
 제주도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농지인 큰 땅들 뿐인데, 취락에서 멀리 떨어져 집을 지으려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쉽게 분할도 어려워 허가 조건이 형성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인지 봐 주시겠습니까?"
 면사무소 공무원들은 친절했다.
 수도관과 도로의 폭, 오수관 설치는 자칫 배 보다 배꼽이 클 수 있으니 잘 따져 보라고 한다.
 필요하다면 전화로도 알려준다.
 시골이라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나에겐 감동 할 일이다.
 전생에 인연이듯 일 면식 없는 내게 베푸는 친절들,
 사람 사는 제주는 그렇게 내 편에서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바닷속을 헤매던 잠녀(潛女) 였을까?
 실 오라기 하나 연고 없는 곳에 왜 살고 싶어 하는지,
 한라산 봉우리를 등에 지고 바라보는 서쪽에 황혼이 진다.
 저녁 바다가 붉게도 물드는 이곳에,

 창고를 닮은 네모난 까만 집,
 투박했지만 나름 내부에 가치를 둔 공간으로 내게 꼭 어울리는
 작은 집을 지었다.
 얕은 담장이 내게 말한다.
 경계가 무슨 소용이냐고,
 제주의 사계절이 나의 정원이라고,
 굳이 금 긋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흐트러진 건축 자재 옆에 벗어 놓은 목 장갑이 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믹스커피 한 잔에 피로가 녹는다.
 가장 진부한 것이 진실이라 했는가,
 순한 사람들이 사는 곳,
 제주에서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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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2024-02-16 15:53:17
쓰신 글에서 제주도 풍경이 그려지네요.
감사합니다.

차현숙 2024-02-01 11:10:32
판포리 언니네 집
달려가고픈 그 곳.
집 지을 때 사연이 담겨있는 글
반갑게 잘 읽었어요.
판포 바다처럼 늘 푸르게 청청하시길요~~~

이금옥 2024-01-31 21:34:10
바다를 향한 박공지붕.
둥근 테이블.
잘 익은 조명 아래서
바람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있을..
설중매 같은 그 시인에게
다 부질 없을 지라도
갈대에 노래를 전해본다.

행복소년 2024-01-30 22:56:31
아름다운 제주에서 좋은집짓고 평안하게 살아가시길 축원드립니다 ~^^

실비아 2024-01-30 20:35:17
제주에 집 지은 한 사람으로써 그 수고로움에
머리, 어깨 쓰담쓰담요ㅋㅋ
품어준 새둥지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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