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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의 그림책 여행](2) 몽생아, 그림책 여행 가자!
[김란의 그림책 여행](2) 몽생아, 그림책 여행 가자!
  • 김란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12.17 00: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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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 2021.
▲ 김란. 2021. ⓒ뉴스라인제주

그림책의 첫 장을 막 넘기려는 아이들은 비밀의 문 앞에 선 것처럼.
마법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드디어 그림책을 펼친 아이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이 처음 만나는 세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가지요. 이처럼 아이들은 온 마음으로 그림책 세상을 대합니다.

그림책의 거장, 다시마 세이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팔리기 위해 만드는 그림책은 경계해야 한다. 그림책을 상업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예술이어야 한다.’

처음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 ⟪뛰어라, 메뚜기⟫를 펼쳤을 때가 생각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보던 나는 눈이 커지고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느닷없이 주인공 메뚜기가 살아서 그림책 밖으로 툭, 튀어나왔거든요. 물론 그림이 너무도 생생하고 색채와 선이 파득파득 살아있기 때문이었지요. 조그만 주인공 메뚜기가 주변에 사는 뱀이랑 무서운 적들에게 용감하게 맞서는 모습입니다. 결국 메뚜기는 적들을 물리치고 작은 날개로 파닥이며 그곳을 빠져나오지요. 그리고 메뚜기 짝꿍까지 만납니다. 이처럼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힘이 넘치고, 세계관은 강한 생명력으로 가득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눈길을 주는 작가의 사랑, 아이들에 대한 넘치는 애정, 자연의 색채에서조차 생명을 발견하는 세밀함이 그림책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림책이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자신과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온 다시마 세이조의 업적에 찬사를 보내고 그를 세계와 공유하고 싶습니다.
-평론가‧ 큐레이터, 히로마츠 유키코

그럼 1회에 소개했던 『잡았다!』에 이어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 세 권 『염소 시즈카』,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모르는 마을』을 만나보겠습니다.

⑵ 생명의 작가, 다시마 세이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종교적 행위처럼 느껴진다는 다시마 세이조.

(나무 열매들로 그림책 작업을 하는 있는 다시마 세이조)
▲ (나무 열매들로 그림책 작업을 하는 있는 다시마 세이조) ⓒ뉴스라인제주

다시마 세이조는 현재 니가타현 토오카마을에 있는 폐교를 거대한 그림책⟨그림책과 나무열매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그림책으로 바뀌고 있는 폐교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마을은 늘 붐빈다고 합니다.

다시마 세이조는 그림책 작가로는 물론 현대미술 분야에서도 화가나 설치 미술가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에 관한 극장용 영화도 제작되었을 정도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류재수( 보림출판사에서 출간된 ‘염소 시즈카’ 추천사)

다시마 세이조는 폐교에 정착하기 전까지 도쿄 변두리 히노데타운에서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며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염소 시즈카(보림출판사, 2018. 고향옥 옮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호코는 농사를 짓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아기 염소를 데리고 왔어요.

나호코네 집은 동산 위에 있는데, 아기 염소는 시도 때도 없이 매애애 하고 시끄럽게 울지요. 온 마을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염소 소리가 동네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 걱정한 엄마가 ‘조용!’, 아빠도 ‘조용!’, 나호코도 ‘조용!’ 하고 소리치지요. 그래서 아기 염소는 일본말로 ‘시즈카! (조용)’가 되었지요.

시즈카와 나호코는 친구가 되었어요. 시즈카는 풀이 자라는 것보다 더 빨리 자라지요. 왜냐하면 풀이 자라는 대로 시즈카가 다 먹어버리니까요.

『염소 시즈카』를 읽다 보면 누구든지 당장이라도 그 집에 가면 시즈카와 나호코가 활짝 웃으며 달려올 것 같은 책 속의 인물들과 시즈카가 지금도 그 마을에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염소 시즈카』는 모두 일곱 권의 시리즈로 나왔는데, 보림출판사에서 한 권으로 합본한 특별판입니다. 208페이지나 되는 걸작 그림책이지요.
이 책은 주인공 나호코의 가족과 염소 시즈카가 함께 사는 이야기인데요. 다시마 세이조는 『염소 시즈카』는 자신의 가족의 그림일기라고 말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의 가족이 히노데타운에서 살 때 경험한 이야기이죠.

시즈카는 쑥쑥 자라지만 시내를 폴짝 뛰어넘어 강 건너 할머니 할아버지네 집으로 뛰어 들어가 어지럽히기도 하는 말썽도 부립니다.
하지만 시즈카는 어느새 자라서 멋진 짝을 만납니다. 시즈카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드디어 아기 염소를 낳았습니다.

아기 염소였던 시즈카가 엄마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그림에서 시즈카가 엄마가 되는 기쁨과 행복, 고통, 숭고함까지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엄마가 된 시즈카는 아기 염소 뽀로(아기 염소가 걸을 때 내는 소리, 또깍 또깍)을 정성으로 돌보지요. 염소 우리를 깨끗하게 하려고 밖에다 누고, 눈을 크게 뜨고 늑대로부터도 아기를 보호해 주지요. 하지만 엄마 젖을 쪽쪽 빨아 먹던 뽀로가 풀을 뜯기 시작하자 냉정하게 독립시킵니다. 뽀로가 어쩌다 젖을 먹으려고 하면 뒷발로 차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지요.

결국 뽀로는 같은 마을에 사는 사촌 네 집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나호코는 사촌에게 뽀로를 잘 돌봐주라고 부탁하지요. 뽀로가 떠나던 날, 시즈카는 오랫동안 매애애 웁니다. 나호코도 한참 동안 울었지요.

아픈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시즈카는 강 건너 할아버지네 밭으로 가서 어린 양배추를 스물여덟 개나 먹고, 피망은 한 입 먹어 보고 매워서 그냥 두고, 할아버지 집 마당으로 들어가서 통나무에 열린 먹음직스러운 표고버섯을 먹고 또 토마토를 먹고 또 먹어서 튼튼해졌지요.

시즈카가 이렇게 밭을 헤치고 마구 먹어대며 말썽을 부리지만 다시마 세이조는 한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가축이라 하여도 함께 살면 식구가 된다고 생각하지요.

시즈카의 젖으로 우유와 치즈를 만들고, 요구르트와 아이스크림도 만들어서 온 가족이 화목하게 둘러앉아 맛있게 나눠 먹지요.
시즈카를 키워준 가족에게 시즈카도 보답을 하는 거지요. 이렇게 나호코네 가족은 시즈카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사계절, 2012. 황진희 옮김)』

우리 어린이들이 전쟁이 없는 곳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12명의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기획한 12권의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나라를 위해 싸워라!”
많은 사람이 응원했고, 나는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엄마 혼자서만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 안녕히 계세요.”
명령을 따라 총을 쏘았습니다. 나와 똑 같은 사람을 향해. 적의 포탄이 내게로 날아들었습니다. 나는 달아날 수도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머리카락도 눈도 타버렸습니다.
다리도 몸둥이도 얼굴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내 몸은 갈가리 찢어져 날아갔습니다.
...(중략)...

누구를 위해 죽이고, 누구를 위해 죽음을 당하는가요?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요?

끔찍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내 편도 네 편도 없이 뒤섞여
넋이 되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동생도 죽었습니다.

엄마의 슬픔이 보입니다.
어떤 분노보다도.
강하고, 깊고, 처절한 슬픔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무도 볼 수 없겠지만,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 이야기를, 여러분과 똑같이 살았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다시마 세이조의 강력한 메시지가 드러나는 그림책입니다. 다시마 세이조는 그림책 작가이며 동시에 환경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만약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 죽는 것은 아이들이고, 그 아이들을 지키려는 사람들, 그리고 힘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죽어 나가는 그런 상황이 된다. 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어릴 때부터, 어린 시기의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주고 싶다. 어린 시절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그것으로 인해 평생을, 일생 동안에 반전에 대한 생각을 갖도록 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그림책을 계속해서 그리겠다.’ (인터뷰- 알라딘 이승혜)
그는 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모르는 마을(우리교육, 2009. 엄혜숙 옮김.)』

<오늘은 소풍.
“도시락 잊지 마!”
여동생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바로 표지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버스를 놓쳤다.’>

첫 페이지에서 소풍을 가지 못하게 된 주인공 아이의 우울한 마음을 표현한 어두운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 하지만 금방 뒤에서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가 와서
그 버스에 올라탔다. 가는 곳이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모르는 마을’에서 내렸다.
길을 걷다 보니 민들레 아이들도 걷고 있었다.>

민들레가 걷다니!
이쯤부터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은 눈치를 채지요.
주인공 아이가 내린 곳은 어쩌면 소풍보다 더 신나는 곳. 호기심으로 마음이 두근두근 대는 이상한 곳.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주인공 아이와 함께 판타지 세상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길가에 작은 새가 풀처럼 심어져 있고, 시냇가에서 파인애플이랑 바나나랑 망고가 헤엄치고 있었지요. 아이는 물속에서 바나나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밭에는 소와 돼지가 물고기와 함께 자라고 있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콩벌레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채소로 이루어진 마을, 배가 고프면 건물들까지 먹어버리는 여치.

<민들레는 나를 뱉어버렸다. 나는 민들레 솜털을 타고 돌아왔다. 여동생이 또 맨발로 뛰어 나왔다.
내가 모자도 옷도 구두도 배낭도 바지도
잃어버렸는데도, 엄마는 야단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판타지 세상이지요.

아이는 민들레 씨앗을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소풍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지요. 그런데 아이가 소풍도 안 가고 모자도 옷도 배낭도 바지도 잃어버렸는데도, 엄마는 아이를 혼내지 않습니다. 다시마 세이조는 아마도 모든 규칙, 규제, 어떤 속박, 심지어는 일상의 번거로움까지 다 탈출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도 역시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20여 권의 그림책 중, 여기 소개된 세 권의 그림책)
▲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20여 권의 그림책 중, 여기 소개된 네 권의 그림책) ⓒ뉴스라인제주
김란 작가 (그림책, 동화 작가)
▲ 김란 작가 (그림책, 동화 작가) ⓒ뉴스라인제주

김란 작가는 단편동화집『마녀 미용실』, 어린이 제주신화『이토록 신비로운 제주신화』, 그림책『외계인 해녀』,『몽생이 엉뚱한 사건』, 『파랑별에 간 제주해녀』, 제주신화 그림동화 『신이 된 사람들』, 그림동화 『차롱밥 소풍』 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남시 스타필드 작은 미술관에서 그림책 원화를 전시했습니다. 현재 제주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스토리텔링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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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순 2021-12-17 12:49:58
축하드립니다. 김란작가님.
김란작가님의 열렬팬입니다.
좋은 그림동화 소새해 주셔서 감사해요. 읽으면서 판타지 다음세계를 상상하는 어링이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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