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은 알고 있다
오을탁
4월의 햇살은
얼었던 산야를 녹이고
이때다 싶은지 한라산에는
겨울의 끝을 밀어내는 꽃들이
봄바람을 타고
잠든 뿌리를 깨운다
짧은 꽃의 계절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
가을인가 하면 어느덧 겨울
마음 바쁜 꽃은 오몽*해야 하니
한라산 꽃들은
제주인 삶과 닮았나
지난 겨울바람
삭풍이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꽃잎 꺾인 나뭇가지
우상 같은 흉하게 얽힌 뿌리들
뒤에 남긴 것은
산 자들의 눈물이라
4월의 햇살은
꺾인 가지에 입술 대고
얼룩진 계곡에 봄비 뿌리며
눈 덮인 흔적 지우기 바쁘지만
겨울이 한 일을
한라산은 알고 있다.
* 오몽하다 - '움직이다, 일하다'의 제주어
□ 오을탁(吳乙鐸) 시인(작가), 프로필
1959년 제주 출생.
제주국보문인협회 사무국장,
월간 국보문학 등단
(고도, 홀로서기, 숨은그림찾기 작품 신인상 수상)
한국국보문인협회 편집위원,
한국국보문인협회 시분과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제주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학신문 작품대상.
시집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말을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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