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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67)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와서
[자청비](67)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와서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7.0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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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박경리 작가의 전신 동상이 보였을 때 나는 이번 여행의 절정이 앞에 있음에 전율했다. 실물보다 작게 만들어진 동상의 발판 뒤에는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금고 부녀회에서 육지 여행이 잡혔을 때 신청을 했지만, 날짜를 헤아려보니 초당옥수수를 따야 할 시기와도 맞물리고 안팎으로 일이 너무 많아서 갈 것을 포기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다 일정을 찬찬히 보니 강천산 군립공원, 순천만 국가정원, 하동 스카이 워크 전망대 관광에 이어 다음 날 하동에서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 마을 최참판댁 관광이 잡혀 있어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코로나로 여행을 가본 지도 오래되었지만, 박경리 작가와 연관된 곳을 방문한다는데 설렜다.

대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막연히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심 후 끄적였던 글이 백록문학상을 받게 되었고 그것이 40대가 돼서 소설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박경리 작가는 ‘토지’를 읽고 내 롤모델로 존경하게 되었고 내 핸드폰 배경화면도 박경리 작가의 사진이다.

최참판댁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는 ‘박경리 토지 문학비’가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서 양옆으로 매실밭들을 지나고 여러 가게를 지나며 올라가다 보니 최참판댁 왼쪽으로 ‘박경리 문학관’이 있었다. 나는 최참판댁만 생각하고 왔다가 옆에 문학관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횡재한 기분이었다. 나는 문학관 먼저 가고 싶었는데 일행들이 최참판댁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에서 ‘토지’를 방영할 때 본 적이 없지만, 세트장이었던 곳에는 ‘칠성이 임이네’, ‘오서방네’, ‘우가네’ 등의 팻말이 붙어있었다. 최참판댁은 그 규모부터가 사람을 압도했다. 문간채, 중문채, 별당채, 솟을대문, 초당, 사랑채, 안채, 사당, 뒤채, 행랑채 등을 갖춘 기와집이 너른 평원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그 위용을 자랑했다.

그런데 최참판댁에서 일행들이 단체사진도 찍으면서 느긋하게 움직인 터라 시간이 이십여 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관광버스가 세워진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감안해야 했다. 문학관을 보지 않고 그대로 내려가는 일행도 있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진 찍기에 바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사진으로 다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사진 찍은 것을 집에 돌아가면 찬찬히 볼 예정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것들과 유리관에 담겨있는 ‘토지’의 원고들과 ‘토지’ 책들을 바람 같은 속도로 찍었다. 박경리 작가의 육필 원고와 만년필, 손잡이가 뱀꼬리처럼 휘어진 돋보기들을 감상하지도 않고 먼저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느 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서 박경리 작가의 옷과 재봉틀이 들어있는 유리관은 사진 찍기 전에 감상 먼저 하게 됐다. 비로소 박경리 작가의 숨결을 느끼는 거 같았다. 가만히 서서 천천히 눈길을 줬다. 핸드폰 카메라로 바라보기 전에 내 눈이 교감을 원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정작 박경리 문학관을 떠올리게 되면 뇌리에서 선명하게 떠오를 것은 저 남색 치마와 잿빛 저고리, 그리고 재봉틀이겠구나.

하동을 벗어나는 관광버스 안에서 나는 급하게 찍었던 사진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봤다. 별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건 단지 사진일 따름이었다. 시간이 부족했더라도 내 눈이 몇 가지라도 정성껏 감상했으면 됐을 것을 왜 욕심으로 사진찍기에만 바빴는지 후회스러웠다. 사진은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봐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을.

여행을 가면 남는 게 사진밖에 없다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지만 정작 우리가 여행하는 목적은 여행지에서 자기만의 감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이번 박경리 문학관의 경험을 통해 그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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