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한 송이
허수경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농담 한 송이 따서 가져오고 싶다
그 아린 한 송이처럼 비리다가
끝끝내 서럽고 싶다
나비처럼 날아가다가 사라져도 좋을 만큼
살고 싶다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2018년 8쇄
우리네 무거운 일상들이 가벼운 농담 혹은 가벼운 담론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가장 서러운 곳으로 가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응어리진 슬픔 분해해 주고 늘 그랬던 것처럼 차가운 심장에 농담 한 송이 꽂아두고 그 소굴에서 나오고 싶다.
아리고 아린 슬픔 따위는 내가 먹어치우고 당신은 그저 흰빛의 농담처럼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저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무거웠던 내 삶이 낯선 별에 유괴당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저 노을 뒤로 사라질 수 있겠다.
너를 사라지게 하고/ 나를 사라지게 하고/ 둘이 없어진 그 자리에/ 하나가 된 것도 아닌 그 자리에/ 이상한 존재가 있다,/ 서로의 물이 되어 서로를 건너가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종이배처럼//
(허수경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마지막 詩)
서럽지만 결코 녹슬지 않는 청동의 기록처럼 詩는, 詩人은, 詩集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로운, 이 나비 같은 시간'을 관통한다.
코로나 블루의 시대를 견디는 우리 또한 나비의 자세로 먼 곳을 본다. 혼자 가는 먼 집이어도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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