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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77) 고흐를 생각하며
[자청비](77) 고흐를 생각하며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10.20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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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빛의 벙커’가 있다. 제주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몰입형 미디어아트 상영 공간이다. 빛의 벙커를 오픈하면서 클림트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상영했었다. 그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벽이 스크린이 되어 미술 작품이 음악과 함께 흐르다가 흩어졌다 만나고 사라졌다 다시 샘솟듯 나타났다. 그림 속 꽃이며 나무,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며 말을 걸어오는 듯하였다. 사방이 그림과 음악이 흐르는 공간 안에 있으니만치 나도 작품 속의 한 인물처럼 느껴졌다. 관람하는 동안에는 오직 살아 움직이는 그림과 음악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미디어아트(Media Art)라는 신기술 덕분에 미술관에서 정지된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빛의 벙커에서 고흐 전을 한다기에 성산포로 향했다. 날씨는 황사 때문인지 하늘이 뿌옇지만, 예전의 그 느낌 때문에 마음은 설레었다.

고흐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1853-1890)이며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고 불린다. 그는 생전에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고 고독했던 화가다. 그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다. 그림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목사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사가 되고자 신학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목사의 길도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고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가 199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팔백 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가 그림에 얼마나 열정을 쏟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온 가족이 고흐를 후원하고 응원해 주었더라면 고흐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문의 명예, 빈부의 차, 직업의 차별 등으로 고흐가 원하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그는 점점 고독과 가난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동생 테오가 후원해 주어서 겨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벙커 안은 어두웠지만, 사방의 벽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음악의 리듬을 타고 빛과함께 흐른다.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움직이는 화면에 몰입한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의 작품들은 지금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화면에서 그의 작품들이 다시 살아난다. 꽃으로 피어났다가 들판의 밀밭과 포도밭, 반짝이는 하늘과 강물 등의 풍경과 노동하는 사람들, 자화상들이 반복적으로 흐른다. 자주 봤던 작품은 익숙했지만 못보던 작품들도 많았다. 강한 색채와 거친 붓 터치의 느낌이 싫지 않다. 윤곽선도 뚜렷하여 더욱 강렬한 느낌이 든다. 그림으로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보이는 현상 자체라기보다는 내면에 숨겨진 것들을 표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네덜란드, 파리, 아를 등의 풍경도 만났다. 한때 고갱과 살았던 노란집도 흘러갔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이고 어두워 보였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서도 그렇고 자화상에서도 그렇다. 특히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 그 눈빛과 꼭 다문 입술에서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누구나 어둠보다는 빛의 세계를 희망한다. 고흐 자신도 끊임없이 빛으로 나아가고자 원했지만, 점점 눅눅하고 어두운 곳으로 빠져들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린 사람들은 어둡고 우울한 표정이 대부분이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볼 때마다 스스로 귀를 자른 사연을 떠올린다. 고흐는 아를로 와서 화가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당시 잘 나가는 고갱과 공동생활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고갱과 심하게 다투었고 고흐는 분노에 못 이겨 면도날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 그 일로 고갱은 파리로 떠났고, 고흐는 병원 신세를 지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순탄치 못한 삶의 이야기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는 네 살 아래 동생 테오였다.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글에는 그가 내면적으로 추구하는 삶과 갈등, 고통 등이 담겼다. 가난과 고독이라는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고, 고독함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 사랑은 매번 거절당하거나 실패로 끝났다. 그런 상황의 그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림뿐이었다. 마지막에 정신병적 증세로 고통을 받을 때에도 그림을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만이 그를 지켜주고 있는 유일한 삶의 의미였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작품이 흐른다. 하늘에는 불길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별들이 움직이고 있고 들판과 마을의 집들 교회의 종탑과 사이프러스 나무가 흘러간다.

그의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그렇게 강렬하게 치솟고 있었을 것이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나를 꿈꾸게 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화가로서 거대한 별이 되어 반짝이고 싶었으나 서서히 한계를 느꼈다.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편지에 썼다. 그 별에 이르고자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어야만 했던 비운의 화가 고흐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우울해진다. 귀에 붕대를 감은 그는 화면에 등장하여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할 것 같지만 꼭 다문 입술에서 비장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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