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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69) 애월 바당
[자청비](69) 애월 바당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7.21 09: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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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수필가,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수필가,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몇 해 전 애월 해녀분들을 만나 취재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애월리 해녀 회장님댁을 방문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다에 성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면서 걱정하는 소리를 했다. 그해 마지막으로 성게 작업하는 날이라는 연락을 받고 기회를 놓칠세라 차를 몰고 애월 바닷가 해녀분들을 찾아갔다. 해녀분들이 고무 옷을 입고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바다 갯바위 위에 앉아계셨다. 허리에는 납덩어리를 묶고, 테왁과 망사리, 성게 캐는 빗창, 물안경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덟 분이 나오셨다. ‘천장 만장’ 별명을 가진 삼춘도 나오셨다. 천장 만장은 ‘멀리멀리’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먼 곳까지 가서 채취하는 으뜸 해녀라는 의미다. 상군해녀답게 나이를 뛰어넘은 기상이 남다르다. 요즘 바다 상황이 어떠냐고 여쭈었다. 이구동성으로 해산물이 많이 줄었다는 말씀과 다시 바다에 와요. 이야기가 나왔다.

오염의 주범은 가스공사라고 했다. 가스공사의 피해를 아무리 하소연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의 인맥인지 몰라도 큰 빽이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약자의 외침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우리 행정을 비꼬는 말이다.

“올해는 미역도 안 나고 톳도 안났수다(안 납니다). 우뭇가사리도 안 나고 애월 바당은 완전히 판났수다(정상이 아닙니다)”.

해녀 회장의 말에는 안타까움과 절망감이 담겼다.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애월에 가스공사가 들어오면서 시멘트 물이 바다로 흘러나오고, 항구가 변하면서 자연적인 물 순환이 안 되어서 전복도 다 죽어버렸다. 콘도에서 바다로 구정물을 버리는 얌체족 때문에 바다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콘도에서 하수구가 바다로 흘러가게 했는데도 그걸 도에서 막지 못하고 있다. 시장님도 두 어 번 만났고, 도지사님은 몇 번 만나려고 해도 안 만나주니 답답할 뿐이다.’라고 했다.

삶의 터전인 바다가 개발이라는 이름 때문에 점점 오염되어 죽어가고 있으니 누군들 가슴이 아프지 않으랴마는 해녀 삼춘들에게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현실이다. 바다가 살아있어야 그 안에서 소라, 전복, 성게, 미역, 톨, 우뭇가사리 등이 날 텐데,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갯바위에 쪼르르 앉아있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모습,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그 마음마저 사진에 담았다.

물속을 들어가기 바로 전에 물안경을 닦는다. 물안경은 생 쑥을 뜯어서 그 안을 문지르며 닦는다. 쑥으로 닦으면 향기도 좋고 물안경 안에 서리방지 효과도 있단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물안경을 쓰고, 오리발을 신고 테왁과 망사리, 성게 캐는 빗창까지 모두 준비가 되었다. 완전히 무장했으니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테왁도 망사리도 따라 들어간다. 곤두박질하더니 물 위에는 거꾸로 선 오리발이 보인다. 나중에는 주황색 테왁만이 선명하게 동동 떠 있다. 테왁은 해녀의 생명 줄이다. 그 생명 줄에 의지하여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들어갔다가 더는 숨을 참을 수 없으면 솟구쳐 나와 ‘호이~’ 숨비소리를 낸다. 멀어질수록 숨비소리도 멀어져 갔다.

물에든지 3시간쯤 지났다. 멀리서 하나둘씩 망사리 가득 성게를 캐고 물 밖으로 올라온다. 바닷가 돌 위로 올라온 성게 망사리는 등짐으로 질 수 있게 묶어야 한다. 망사리를 지고 힘겹게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해녀들의 삶의 무게가 저리도 무거울까 싶었다. 그 무거운 짐을 옮기기 위해 미리 마중 나온 가족도 있다. 무거운 망사리를 물 밖으로 끌어 올리는 일을 거들고, 성게 까는 일을 도우러 온 것이다.

성게 망사리를 내려놓는 곳은 바닷가 어귀 빈터이다. 성게를 까는 장소로 미리 그늘막을 쳐 놓았다. 짐을 내려놓고 해녀들은 샤워실로 향한다. 샤워하는 곳을 따라 들어갔다. 옛날에는 돌로 담을 쌓아서 막아서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짠 물을 대충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게 불턱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불턱이 번듯한 건물로 바뀌었다. 건물 안에는 샤워 시설뿐만 아니라 온탕시설이 다 되어 있었다. 안쪽에는 큰 방이 있는데, 회의도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냉장고와 커피포트 등 소소한 식기들도 있었다. 옛날에 비하면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

샤워를 마친 해녀삼춘들은 그늘막 아래에서 간식을 먹는다. 그날은 성게 작업 마지막 날이라 간식이 풍성했다. 막내 예비해녀의 남편이 준비한 피자와 닭 날개가 돋보였다. 다른 분은 멜 튀김을 꺼내 놓는다. 나도 가지고 간 빵과 우유, 참외를 꺼내 놓았더니 더욱 풍성한 식사가 되었다. 한 가족처럼 오손도손 모여 앉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해녀의 공동체 문화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했다.

성게 까는 모습을 유심히 본다. 성게를 반으로 자른 후 그 안에 노란 알을 작은 찻숟가락으로 파낸다. 똥은 다시 골라낸다. 성게 1킬로가 되려면 한 망사리를 다 까야 할 것 같았다. 성게 값이 비싼 이유를 알겠다.

한 분이 어쩌다 잡은 작은 오분작을 즉석에서 먹으라며 입에 넣어 주신다. 해녀삼춘들의 바닷속에서 숨 참으며 잡은 걸 선뜻 먹여주는 그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해안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는데 애월바다는 아름다웠다. 반짝거리는 물결, 멀리 떠가는 배, 푸른 하늘, 낮은 언덕 등 부족함 없이 보였다. 거기다 길가에 즐비한 카페에는 북적북적 손님으로 가득했다.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애월 해녀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 귓가에 맴도는 까닭은 무엇일까.

“애월 바당은 완전히 판났수다.”

요즘도 구엄 해안도로를 걸을 때면 파도 소리에서 그 말이 섞여서 들리는 듯하다.

“애월 바당은 완전히 판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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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2022-07-22 07:05:25
엄쟁이 바당은 괜찮으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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