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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56)섬에서 섬으로, 울릉도 이야기
[자청비(56)섬에서 섬으로, 울릉도 이야기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4.21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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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 김순신 제주수필문학회장 ⓒ뉴스라인제주

코로나로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확 날려 버릴 겸 떠나기로 했다. 제주 섬사람이 그 섬으로 가고 다시 버킷리스트의 최종 섬을 밟는 환상적인 여행코스다.

먼저 가려는 섬의 뱃길을 알아보는데 포항, 묵호, 강릉 세 곳이 있었다. 쾌속선으로 가면 세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작년 9월부터는 포항에서 크루즈가 운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멀미 없이 가고 싶어서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3박 4일 관광상품을 예약하고 포항 비행기 표를 끊었다.

제주도와 마찬가지고 화산섬이고,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있다. 제주에 비하면 면적이 1/26 정도 작은 섬이지만 자연경관 보존이 잘 되어서 아름답다.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는 섬이다.

저녁 비행기로 포항에 도착하자, 친구 부부가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색색이 변하는 멋진 야경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푸는 사이 배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6인실 침대는 하얀 면 이부자리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밤바다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저 배가 어디론가 가고 있을 뿐이다.

포항에서 약 6시간 반이 걸려서 섬에 도착했다.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상쾌하고 싸한 바다 내음, 가까이 우뚝 서 있는 산이다. 저게 성인봉이구나 하며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했다.

마중 나온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아침을 먹고 관광이 시작되었다. 울릉도를 A 코스, B 코스로 나누어 울릉도를 돌아보는 것이다. 봉래폭포를 보러 가는 길은 물소리로 여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소리에 맑은 공기까지 천혜의 땅이었다. 사철 이렇게 맑은 물이 철철 흐른다고 울릉도가 축복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단으로 떨어지는 하얀 폭포수 앞에서 잠시 수양하듯 서 있었다.

울릉도를 돌다 보면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삼선암은 울릉도를 대표하는 기암 석이다. 선녀가 땅에 내려왔다가 울릉도의 아름다움에 빠져 하늘로 올라가는 시간을 놓쳐버렸는데, 그에 화가가 난 옥황상제가 바위로 만들어버렸다는 전설이 재미를 더했다. 저동항에 있는 촛대바위의 전설도 가슴이 찡했다. 오래전 고기잡이 나갔던 아버지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매일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관광은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와 함께하면 더 의미가 있고 기억에도 남는다.

울릉도에는 유일하게 평야 지대인 분지가 있다. 나리분지라는 곳을 갔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평야가 있다. 주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늑하게 보이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했다. 나리분지에 가면 더덕 파전에 씨껍데기 막걸리 한잔은 꼭 마셔봐야 한다.

관광 이틀째 아침에 독도를 간다는 배가 오후로 미뤄졌다. 날씨 탓이라 여기서는 그나마 독도 가는 배가 뜨면 다행이다. 오전에 일찍 성인봉을 오르기로 했다. 도동에서 택시로 10분 정도 달려서 KBS 송신소까지 왔다. 성인봉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반겼다. 초입부터 앙증맞은 풀들이 반겼다. 싱그런 잎사귀에 이슬방울이 맺혔다. 새끼손가락만 한 버섯들이 뾰족뾰족 솟아서 아침 인사를 한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식물이다. 빨간 동백꽃이 수줍은 듯 인사한다. 아직은 꼭 다문 봉오리가 더 많다. 송악, 고사리, 삼채나물, 이름 모를 풀들이 반겨주었다. 점점 더 들어갈수록 하얀 눈이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아이젠도 없이 올라왔는데 슬슬 걱정되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옮겨가며 나아갔다. 나무 계단에도 거대한 하얀 용이 드러누운 그것처럼 길을 가로막고 있다. 돌아가기에도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모호한 지점이라 눈 위를 기어가다시피 산을 올랐다. 몇 번의 미끄러짐과 눈에 빠짐은 정신을 꽉 잡게 했다.

성인봉은 성스러운 사람이 사는 산이라 했던가. 마음을 성스럽게 하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이젠이나 제대로 된 등산화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제발 무사고로 성인봉에 오를 수 있기를. 남편도 정신을 집중하여 걸음을 옮긴다. 전에 다리를 다쳤던 터라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미끄러짐으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출발 후에 2km까지는 잘 왔는데 그다음 지점에서 성인봉 방향의 표시판은 있는데 길이 안 보였다. 눈이 쌓여서 등산로가 아예 없다. 앞서간 발자국 흔적을 따라가는데 그 발자국도 여기저기 헤맨 흔적이 역력하다. 주변은 온통 안개로 그야말로 산신령이 곧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되돌아 아래로 내려가는 것도 까마득하고 위로 올라가는 것도 앞이 안 보이니 이도 저도 못 할 처지다. 그래도 가는 데까지는 가보리라는 마음으로 하늘이 보이는 쪽을 향하여 올라갔다.

한참을 오르니 희미하게 표시판이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올라가 보니 능선이다. 성인봉 0.81km. 너무 기뻐서 환호가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귓불을 때렸다. 남편은 아직도 저만치에 있다. 발걸음이 너무 느리고 불안하다.신발까지 미끄러우니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평소 등산화를 잘 챙기다가 울릉도 여행 기분에 그냥 운동화를 신고 온 것이다. 스틱은 챙겨와서 다행이었다.스틱에 의지해 겨우겨우 능선까지 왔는데, 잠시 망설였다. 돌아갈 것인가 정상을 갈 것인가.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 안내판 옆에는 우리가 올라온 중계소 길은 겨울철에 폐쇄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 코스로 헤매며 온 것이었다. 사전 정보가 부족해서 사서 고생한 셈이다. 남은 810m의 정상을 향하여 다시 걸었다. 눈 덮인 길이라 810m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남편을 뒤로 남기고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성인봉 정상이다. 성인봉 984m라고 새겨진 돌기둥을 보니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과 적당히 포기하고 돌아갈 걸 하는 후회가 스쳤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삶이라면 해서 후회하는 게 낫다. 울릉도 성인봉을 언제 다시 밟을 수 있으랴 생각하며 혼자 셀카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정상은 사방이 안개로 덮여서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였다. 실망스러움보다는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게 더 감사했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정상 180m 지점에서 남편은 눈구덩이에 한쪽 다리가 빠졌다. 아쉽지만 그만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겉으로는 상처가 안 났을 뿐 속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심해져서 남편은 안평전까지 2.1㎞를 이를 악물고 겨우 내려왔다. 아슬아슬하게 내려와서 택시를 불러 도동까지 도착했고, 독도 가는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독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119로 병원을 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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