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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47) 어머니의 뒷모습
[자청비](47) 어머니의 뒷모습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2.17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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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께서 병원에 오게 됐다. 한 달 전에 고개가 뻣뻣한 증상이 심해서 약 처방을 바꾸었고 그 결과를 보고 다시 약을 받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걷지 못하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손 억제대를 낀 상태로 외출을 했다. 요양원에서 식사할 때 손 억제대를 하지 않으면 식판을 엎어버리고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처치하려 해도 손으로 때리거나 꼬집어서 손 억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손 억제대를 한 상태에서도 그 손을 들어 때릴 수 있기때문에 휠체어에 고정한 채로 병원에 오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손을 움직이더라도 상판 바닥만 탁탁 때리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이렇게 묶어두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어머니한테 몇 번 맞아보고 요양원에서도 도저히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겠다고 해서 가족들이 손 억제대를 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이번에 병원에 오실 때는 어머니는 손 억제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며느리를 알아보지는 못해도 너무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았더니 왼쪽 손은 아예 가만히 있었고 오른쪽 손은 잡은 내 손을 꼬집기는 하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제는 기력이 없으셔서 손을 들어서 때리지도 못하고 꼬집어도 아프지 않구나, 생각하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처음 모실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치매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허리를 다친 후에 좁혀진 쪽에서 신경을 누르기 때문에 어머니는 걷지를 못했고 앉거나 누워있는 자세만 가능했다. 어머니는 제주의료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24시간 상주하는 간병인이 5개의 침상에 있는 환자들을 돌봤다. 내가 직장 가기 전에 병원에 들르면 간병인은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서 시시콜콜 보고했다. 주로 안 좋은 얘기들이었는데 어머니가 기저귀를 갈 때 전혀 몸을 안 움직여줘서 힘이 드는 판에 욕까지 한다는 것이랑 여기 병실에 5년째 입원해 있는 할머니와 매일 싸운다는 얘기를 계속 들어야 했다. 순하시기만 했던 어머니는 치매가 온 후에 성격이 바뀌고 말았는데 정신이 온전하시면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퇴원해서 집에 가야겠다고 졸랐다. 난감했다. 치매가 있고 거동을 못 하니 계속 누가 돌봐드려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 자리가 있다고 하여 가족들끼리 의논 끝에 거기로 모시기로 했다. 남편은 나보고 어머니를 잘 설득해보라고 말했고 시누이들도 들릴 때마다 아버지 계는 요양원에 같이 살 거니까 어머니한테 막 좋다고 어머니를 부추겼다. 나는 적극 권유하지 않는 모양새를 취했다. 며느리가 설치며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자고 할 수는 없었다.

제주의료원에 입원한 지 보름 만에 어머니는 퇴원하고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시누이들이 다 오고 삼촌이랑 나까지 전부 와서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혹시 집으로 가는 것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갈 요양원 봉고차가 도착했다. 앞쪽의 운전석과 보조석을 남기고 뒤쪽은 환자가 휠체어를 탄 채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된 차였다. 봉고차 뒤의 문이 열리고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받침대가 내려졌다.

삼촌이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시누이들과 나는 어머니 옆에 서 있었다. 받침대 앞에 휠체어가 가까이 가자 어머니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섞어지던 어머니 머릿속 안개가 서서히 걷어지면서 이 상황이 갑자기 이해되신 듯 했다.

“무사 영 보내젠만 햄시니”

누가 내 가슴을 한 대 친 것처럼 쓰렸다.

안면이 있는 요양원 사무국장이 재빠르게 휠체어를 넘겨받았다. 요양원 봉고차가 출발할 때까지도 어머니는 절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셨다.

직장에 가기 위해 차에 탔지만, 한동안 운전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던 것이다.

이렇게 요양원에 가신 지 벌써 오 년이 넘었고 치매는 점점 진행되었다. 요양원에 가서 가족이 눈물을 보이거나 하면 요양원 사무국장이 이런 말을 했다. 집에서 요양원에서만큼 신경 쓰고 잘 챙겨줄 수 있느냐고. 우리 요양원에서 잘 모시고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맞는 말이다. 내가 어머니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인데도 자꾸 회한이 남는 것은 돌봄 노동이 여성의 몫이고 큰며느리인 내가 역할을 해야하지 않았나 하는 내 마음 안의 속박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로지 돌봄이 내 몫으로 떨어졌을 때의 상황을 상상하면 아찔하다.

병든 50대 아버지를 굶겨 죽인 20대 아들의 기사를 보고 황망한 적이 있다.

‘기약 없이 아버지 돌보기 어려웠다’

그 청년은 형편도 어려운데 오로지 아버지 돌봄이 자기 몫이란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후속 보도가 있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견디었을 시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돌봄 노동이 오로지 가족의 몫이요, 그 가족 중 여성의 몫이 되는 게 현실이다. 가정에 돌봄을 받아야 할 가족이 생겼을 때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와 체계가 정립되어 누구나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밟힐 때마다 내가 돌봐야 했다는 회한보다는 가족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부모님을 잘 돌봐드리고 있는 요양원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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