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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청비, 도전과 창조의 제주 여상이었습니다.
[기고]자청비, 도전과 창조의 제주 여상이었습니다.
  • 영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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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2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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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길삼을 배우고, 제사법을 익혀 친정(親庭)을 떠나는 다른 지방의 여인들과는 달리, 화산섬 제주의 여인들은 골갱이 하나로 밭을 일구며 가정을 꾸려가야만 했기에, 노동은 새털같이 많은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땅의 여인들처럼 가지지 못한 것이 없었던 자청비였지만, 언제나 도전과 창조의 길을 선택해야만 했었던 농신의 이야기에서 제주 여인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주년국 땅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이 부부(夫婦)를 맺어 살았는데, 늦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을 하던 차에 동개남 은중절에 영험(靈驗)하다 하여 수륙제를 들이러 가던 길에 서개남 무중절의 스님을 만나 그곳에서 수륙제를 지내고 석달 열흘 뒤에 조진국이 아기를 낳았다. 앞이마엔 해님, 뒷이마엔 달님, 양 어깨에는 샛별이 오송송히 박힌 듯한 여자 아이로 부부는 이름을 ‘자청비’라 지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집 안의 하녀 정술데기는 아들을 낳아서 이름을 ‘정수남이’라 하였다. 이는 수륙제를 지내겠다는 약속을 어겨 화가 난 동개남 은중절 부처님의 조화였다고 한다.

자청비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났다. 용모는 여자인데 행동하는 것은 남자와 같았으며, 얌전하게 있기를 싫어하고 이 일 저 일 참견이었다. 상다락에 상단클, 중다락에 중단클, 하다락에 하단클을 놓고서 비단을 짜는데 그 솜씨가 또한 남달랐다. 하지만 자청비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정수남은 허우대는 멀쩡한데 틈만 나면 빈둥거리고 낮잠을 자기 일쑤였다.

어느 날 자청비가 상다락에서 베틀을 짜는데, 곁에 온 하녀의 손이 너무 고와 그 이유를 물으니 빨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청비는 아버지 입던 옷, 어머니 입던 옷, 자기가 입던 옷에다 하인들이 입던 옷까지 모두 걷어서 주천강 여울로 빨래를 나갔다. 자청비가가 한창 빨래를 하고 있는데 하늘 옥황 문곡성 문도령이 글공부를 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홀딱 반했다. 그리하여 자청비한테 다가가서 물 한 바가지를 청하여 먹는다. 문도령과 자청비가 변장하여 동생인척 하는 자청도령은 거무선생한테 찾아가 삼천 선비와 더불어 3년을 기약하고 글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거무선생의 명으로 한 방에서 글을 읽고 한 방에서 잠을 자고 한 솥의 밥을 먹으며 지냈다. 그렇게 삼 년 공부가 끝날 무렵 문도령에게 편지가 왔는데, 그만 공부하고 와서 서수왕 따님하고 혼인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문도령이 떠나려고 하니 자청비도 같이 오면서 자기가 여자임을 밝힌다. 두 사람은 하룻밤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다음 날 떠난 문도령이 소식이 없다.

어느 날 자청비는 정수남에게 땔나무를 하러 보냈다. 정수남은 땔감을 하러 갔다가 몰고 간 소 아홉 마리, 말 아홉 마리가 굶어 죽자 이를 다 잡아먹고는 집으로 돌아와, 문도령이 노는 것을 구경하다 이 지경이 되었다고 속인다. 자청비는 자기도 가서 문도령을 만나겠다고 하여 같이 갔다가 정수남이 겁탈하려 하므로 정수남을 죽이고 돌아온다. 부모가 이를 알고 욕을 하자, 서천 꽃밭에 들어가 환생꽃을 가져다 종을 살려낸 뒤 남장(男裝)을 하고 집을 떠났다. 자청비는 천신만고 끝에 하늘로 올라가 문도령을 만난 뒤 혼인을 하였다. 그런데 하늘 옥황의 선비들이 병란을 일으켜 문도령을 죽여 버린다. 자청비는 다시 서천 꽃밭으로 가서 환생꽃과 멸망꽃을 얻어다가 문도령을 살려내고 멸망꽃으로 병란을 평정한다. 하늘 옥황에서는 땅 한 조각, 물 한 조각을 상으로 줄 터이니 세금 받고 살라고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오곡씨를 달라고 하여 받고 남편과 같이 지상에 내려왔다. 그리하여 문도령은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은 하세경이 되어 농사의 신(神)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자청비가 하늘에서 메밀씨를 깜빡 잊고 안 가져와, 뒤에 다시 올라가 받아오느라고 지금껏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자청비는 사랑의 여신이며, 정수아비라는 목축신(牧畜神)을 거르리고, 농사의 풍요를 관장하는 곡모(穀母), 지모(地母)의 신(神)이라고 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귀하게 태어난 여성이었지만, 얌전하기 보다는 참견하기 일쑤였고, 가꾸어지기 보다는 스스로 고와지기 위해 노력하였던 이 땅의 어머님들처럼 도전과 창조를 선택했던 의지의 여인이었음 알게 합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남장(男裝)으로 변장하여 자청도령이 되기도 하고, 서당에서의 갖은 도전에도 지혜롭게 대처하였으며, 겁갑하려는 정수남이의 흉계(凶計)에서 벗어나고, 하늘의 변란을 막고 안주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기보다 오곡(五穀)의 종자를 얻어 이 땅의 농신(農神)으로 좌정함으로써 생산을 돋는 살아있는 존재로 역할하길 기대했던 이 땅의 여성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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