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17 19:57 (금)
[자청비](27) ‘오징어 게임’이 나에게 남긴 것
[자청비](27) ‘오징어 게임’이 나에게 남긴 것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1.09.30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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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오징어 게임’이 화제다. 화제성을 반영하듯 넷플릭스 CEO가 드라마 속 참가자들의 체육복을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려 자신이 457번째 참가자라고 능청을 떨었다. 체육복이 인기일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달고나’ 세트의 인기가 치솟고 있고 딱지치기 또한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쉬는 날에 영화 보기와 독서를 병행하는데 ‘오징어 게임’은 며칠 동안 독서 한 줄 못하게 했다. 한 편 보기가 끝나면 어느새 다음 회 보기를 누르고 있었다. ‘오징어 게임’은 다른 참가자가 죽어야만 우승 상금을 가져가는 살벌한 내용이다. 누가 우승 상금을 가져갈 것인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우승은 어떤 우여곡절을 겪든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주인공이 차지할 테니까) 그 게임이 내가 어릴 때 놀았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오징어 게임’ 등이어서 흡인력이 있었고 그 안에 풀어내는 서사들이 녹록지 않아서 드라마에 빠져들게 했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는 다른 영화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다. ‘이스케이프 룸’이라는 영화에도 방탈출 게임에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방을 탈출하지 못하면 죽임을 당한다. ‘오징어 게임’은 삶이 벼랑 끝에 몰린 참가자들만 초대장을 받는데 다른 영화 ‘이스케이프 룸’에서도 사고를 당하고도 극적으로 혼자 살아남은 사람들만 초대장을 받는다. 게임을 하는데 탈락이 바로 죽음이라는 점과 엄선된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이 비슷하지만 ‘오징어 게임’이 더 강렬하게 뇌리에 남게 된 것은 그 안에 개인들의 서사와 그것을 아우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탈락하면 바로 총으로 죽는 걸 본 참가자들은 규칙 3번 ‘과반수의 참가자가 게임을 원하지 않으면 게임을 진행하지 않는다’에 의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지옥이었다. 돈이 없어서 어머니의 당뇨병 수술을 할 수 없고 많은 빚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한다. 다시 초대장이 오자 사람들은 우승 상금을 위해 제 발로 게임을 향해 간다.

이런 개인들의 서사가 뭉뚱그려져 전체적인 우리 사회상을 돌아보게 했고 일회성 오락거리로 치부할 수 없는 무거움을 안겨줬다. 또한, 연출가는 영리하게도 살인 게임이라는 잔인한 구조에 추억의 놀이를 소환해내고 유치원 내부를 연상시키는 색감을 사용하여 무거움을 희석하고 있다. 기훈이 가장 어려운 우산 모양의 떼기를 하기 위해서 혀로 떼기 뒷면을 핥는 장면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건 믿었던 후배의 배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떼기를 하는 걸 알면서도 후배는 팀원들에게 알리지 않고 각자 다른 모양에 서자고 한다. 자신은 가장 쉬운 모양의 세모를 선택하면서 우산 모양을 선택한 기훈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 세계적인 드라마에서 불편한 진실은 단지 이 게임이 세계 거부들의 오락거리이며 참가자들이 체스판의 말과 같은 존재였다는 점이다.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들, 빚을 갚지 못해 장기라도 팔아야 하는 사회의 최약자들이 서로를 짓밟아야 우승 상금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건 자신의 적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로 규정하게 만든다. 결국 적자생존이라는 틀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 돼버린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더 보게 되었던 ‘오징어 게임’이 나에게 남긴 것은 어떤 주제를 형상화할 때 개인의 서사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통놀이라든가 한국적 서사, 우리 것을 살려서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이 드라마가 뭇매를 맞고 있고 나의 경우 어릴 적 친구들과의 놀이를 추억할 때 이제는 낭자한 피가 같이 연상 된다는 후유증도 있지만 ‘오징어 게임’ 시리즈 2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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