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洗手),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과 손발을 씻는다. 씻는다는 행위처럼 신성(神聖)한 것이 있을까. 경건하다. 하루의 시작이며 마침표이다. 카타르시스다. 손톱 밑에 낀 불결함을 씻어내고 영혼을 정화시킨다. 세수를 할 때는 실컷 울어도 좋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눈의 충혈로 퉁퉁 붓도록 울어도 좋다. 아침저녁으로 마음 놓고 큰 소리로 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시인은 자주 운다. 무아(無我)가 될 때까지.”
세수를 하며
- 문상금
아침저녁으로
하얀 비누가 되고 싶어진다
수돗물을 틀고
두 손을 비비면
어느 나라에서 잠들고 있었던가
비누 거품이 둥 둥
떠내려간다 간혹
덜 깬 잠들도 보인다
세수를 하며
그 순결한 몸으로
세상의 찌든 온갖 때
말끔히 씻어내고 풀어내는
그 엄청난 세척력을 갖고 싶어진다
내 게으름과 우유부단을 분해하고
단단히 무장하고 싶다
세상에 끄떡없고 싶어진다
세수를 하는
아침저녁으로 나는
단단한 거품이 되고 싶어진다.
-제1시집 「겨울나무」 에 수록
흰 세수 비누에서 하얀 거품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가끔 선물 받은 수제로 만든 분홍이거나 노란 비누에서도 흰 거품이 난다. 참 신기하다. 아침에 수돗물을 틀고 두 손을 비비면 비누거품이 둥 둥 떠내려간다. 아직 덜 깬 잠들, 밤새 따라붙던 악몽들, 놀라 소스라쳐 깨어나게 하던 꿈의 언저리를 더듬다보면 창밖은 환히 밝아오고 하루 일과의 시작으로 수건을 목에 감고 세수를 한다. 씻는 행위는 아주 신성한 의식(儀式)처럼 되풀이된다. 그것도 아침저녁으로 말이다.
세수를 할 때마다 흰 비누가 되고 싶었다. 그 순결한 몸으로 세상의 찌든 온갖 때 말끔히 씻어내고 풀어내던, 그 엄청난 세척력을 가진 비누가 되고 싶었다. 늦잠이나 게으름, 우유부단 같은 것들은 비누의 세척력으로 분해되고 유연해져서 또다시 단단히 무장한 전사가 되고 싶었다. 이 풍진(風塵) 세상에 끄떡없고 싶었다.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희망가를 부르며 불꽃같은 아침을 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세수를 하며’는 ‘서귀포성당’ ‘상여’ ‘새’ ‘선풍기’ 와 함께 박 목월 시인이 창간한 시전문지 심상(心象), 1992년 6월호에 등단작품으로 게재되었다. 스물여섯 살, 시(詩)를 향한 질풍노도의 시간들이었다.
큰 소리로 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붉은 얼굴로, 홀로 엉엉 울라.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불안해하지도 말라. 어차피 이 세상으로 올 때 한바탕 울음으로 시작하지 않았는가. 상처받는 자신이 싫을 때, 상처를 주는 자신이 싫을 때, 섭섭함이 함박눈처럼 쌓일 때, 분노가 치밀 때, 자꾸만 추락하고 넘어질 때, 엉엉 통곡하고 통곡하라! 큰 울음 굿판을 열어라. 수돗물을 틀어놓고 비누로 박박 씻으며 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라. 아침저녁으로 흰 거품 사이로 고운 사람들, 미운 사람들이 둥둥 떠다니고 분해된다.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아침저녁으로 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비누는 시인이다. 흰 거품은 시를 짓는 일이다. 흰 거품이 흘러가는 것은 카타르시스, 즉 정화(淨化)로 가는 길이다. 아침저녁으로 세수를 하고, 시를 쓴다. 시(詩)라는 돛단배를 타고 망망대해(茫茫大海), 정화(淨化)의 바다, 화엄(華嚴)의 빛나는 바다로 떠내려간다, 온몸 흰 피 내뿜으며.
결국 시업(詩業)은, 쉼 없는 꿈틀거림, 끊임없이 걸어가야 할 마땅한 이유다. [글 문상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