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롬이야기](12) 몽골어 뱀을 닮은 모구리오롬

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2020-05-03     영주일보
성산읍

불과 한 달 전에 모구리오롬을 찾을 때만하여도 온 들녘 벚꽃이 장관이었다. 혹간은 사스레피가 냄새피우기도 하였다. 5월 1일, 다시 찾은 모구리 야영장은 철쭉의 계절이다. 진 핑크, 연 핑크, 흰줄 핑크, 각종 철쭉이 가득하다. 긴 꽃대의 노란 서양민들레가 남풍에 한들한들 춤추는데 키 작아도 보랏빛 오랑캐꽃들이 초롱초롱하다

30여 년 전 김종철선생은 성읍~수산 간 도로공사로 흑 먼지를 날렸다는데 지금은 시절 모르는 차들이 포도 위를 씽씽 내 달린다. 모구리는 성산읍에서 운영하는 야영장이 있다. 넓은 주차장, 운동장, 정자, 모래 깔린 야영터, 캠프 화이어장, 어린이 놀이터, 인라인스케이트장, 취사장, 식수대, 화장실, 집회장, 관리사무소, 대피소도 있다.

야영장에서 모구리오롬은 왼쪽으로 따라가면 된다. 오래 전 제주도에서는 캐어 내 버린 협죽도들이 로프 길을 따라 오롬 길로 이끈다. 보도블록을 따라가면 ‘오롬산책로’ 표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작은 다리를 지나면 오롬 길로 나가게 된다.

탐방로는 허리까지 자란 로즈마리가 줄지어 있다. 손으로 쓸고 지나면 코끝까지 향기가 피어오른다. 좌로는 계절을 맞은 철쭉꽃들이 활짝 웃으며 맞이한다. 편백나무 숲길이 끝날 쯤, 오른쪽(남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덩치 큰 영주오롬과 또 다른 오롬들도 한라를 향하여 우로, 우로 파도쳐 오른다.

야영장에서

모구리오롬은 해발 232m나 표고 82m 밖에 안 되는 낮은 오롬이다. 1960년 이후 박정희정부 때 산림녹화를 강제하며 식재한 소나무, 삼나무가 지금은 온 산의 대세이다. 모구리오롬은 남동향으로 열린 말굽형이다. 북서쪽 능선을 따라서 계단을 올라 걷다가 굼부리 아래로 내려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모구리 오롬의 참 모습을 보려면 성산읍 쪽으로 내려가다가 오롬자락을 따라 좁은 시멘트 포장길로 나아간다. 좌로는 가족 묘지들이 널려 있고 우로는 편백나무 우거진 숲을 따라 나가면 오롬 서북쪽에 이른다. 거기서 계속 서쪽으로 나가면 목장입구에서 포장길은 끝난다.

모구리오롬은 북쪽에서 보면 동쪽이 높고 급하게 기울어지고 서북은 뱀 꼬리(이등변 삼각형)같이 길게 뻗혔다. 그러나 영주오롬에서 보면 동남쪽으로 또 하나의 날개가 보이나 빡빡이 들어찬 수림과 가시덤불이 엉켜 분간하기 어렵다. 주위에는 돌짝과 작지 위에 찔레와 청미래 덩굴이 엉켜 있다. 남쪽, 모구리 야영장에서 보는 잘 닦인 탐방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목축이 주업이고 산사태 없는 제주를 육지의 잣대로 강제조림 한 것이 제주 오롬의 아름다움도 목축도 잃어버렸다. 농업화는 곳자왈을 파헤쳐 지하 강을 마르게 하여 해안 용천수도 말라버렸다. 벌써 바닷물을 정수해서 팔기 시작했으니 멀지 않았다. 최악은 아부오롬이고 백약이, 모구리, 용눈이도 그리될 것이다. 식재했거나 나무를 베지 못한 게 원인이다.

1.

모구리오롬의 뜻을 김종철은 “알오롬을 ‘개동산’이라 하고 강아지가 어미젖을 그리는 형체라 한다. 이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대어 맞추거나, 당치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대어 조건을 맞춤)이다. 모구리오롬의 견강부회 원인은 한자로 표기(음차)한 모구악母狗岳, 모골악毛骨岳 때문이다.

모구리? 모골이? “한자도 한글도 아닌데? 몽골어가 아닐까?” 제주에 ‘도구리’라는 나무로 만든 큰 그릇이 있다. 육지의 ‘함지박’이다. 몽골친구와 찾아보니 ‘둥근 것, 자동차타이어’로 나와 있다. ‘모고리’는 몽골어로 ‘뱀могойᄆᆞ고이’로 나와 있다. ‘뱀이 많다’ 할 때는 ‘ᄆᆞ고태могойтой’라 하였다.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개狗가 아니고 뱀이요, 알오롬은 용이 되려고 뱀이 탐하는 여의주 모양인 것이다.

모구리를 3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1)뱀을 신성 시 해서?-뱀을 신神으로 섬기는 ‘표선면 토산땅’이 지척이라서? 2)뱀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3)뱀을 닮아서? 이중에 3가지 뜻이 모두 있으나 3번째 뜻이 더 깊어 보인다. 몽골어 ‘ᄆᆞ고이’를 ‘어미개母狗’로 보았기에 알오름을 ‘어미젖을 찾는 강아지’로 본 것이다. 오름의 머리는 뱀의 모양이었다.

‘모구리’ 오롬의 정확한 몽골발음은 ‘ᄆᆞ고이’로 아래아를 써야하나 편의상 더 가까운 발음으로 ‘모구리’라 쓰는 것도 무방해 보인다. 제주에서 사용하는 아래아는 몽골 발음과 유사하나 현재 제주에서도 ‘모구리’라 쓰기에 그냥 채용해도 좋지만 그 뜻을 밝혀주어야 한다.

모구리오롬을 탐방하며 ‘아! 시원해!“하고 중얼거렸다. 오롬을 오르는 솔숲, 산불초소가 있는 오롬정상,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삼나무 쉼터도 상쾌하다. 같은 날 도랑쉬오롬을 오르고 왔다는 김교수 내외를 만났다. “얼마나 더워서 땀을 흘렸다”고 한다. 모구리오롬은 냉혈동물의 등을 타고 가는 길이라서 서늘했던 것인가? ㅎㅎㅎㅎ!

그리운 날, 봄날이 간다. 눈감으면 잠깐인 듯싶은데. 부친이 난산학교 교장으로 계실 때 어머님과 셋이서 유채나물 된장국, 고등어자반에 함께 밥을 먹었는데. 부모님 가신지도 30년이다. 모구리오롬에서 소 먹이던 벗들도 노인이 되어 어디서 살고 있겠지? 모구린지, 도구린지 관심도 없던 산골. 윤달 든 4월, 기인 봄날도 간다. 제비꽃이 울다 지친 제주의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