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영 칼럼](55)피리를 불면

2016-10-22     영주일보

 피리를 불면

-조지훈-

다락에 올라서
피리를 불면

만리 구름길에
학이 운다.

이슬에 함초롬
젖은 풀잎

달빛도 푸른 채로
산을 넘는데

물 우에 바람이
흐르듯이

내 가슴에 넘치는
차고  흰 구름.

다락에 기대어
피리를 불면

꽃비 꽃바람이
눈물에 어리어

바라 뵈는 자하산
열 두 봉우리

싸리나무 새순 뜯는
사슴도 운다.

'고풍의상’과 ‘승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지훈은 1939년 ‘문장’지에 추천을 받으며 작품을 쓴다. 조지훈은 우리 문화를 소재로 내면의 정서를 표현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피리를 불면’은 청록집(靑鹿集)에 실려 있는 시다.

피리는 우리의 전통 악기의 하나이다. 요즘처럼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첼로 등이 일반화하지 않았던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집에서 늘 가까이 했던 악기가 피리가 아니었나 한다.

크기와 부피가 작아서 언제나 휴대하기가 편해서 좋았고, 그 소리 또한 우리의 정서를 잘 나타낼 수 있어서 그렇고, 별 다른 교육 없이도 누구든 입에 갖다 대면 음악이 되어 나오니 좋았었다.

그래서 지훈도 달빛 뿌리는 다락에 올라 기러기 날아가는 창공을 바라보며 한 곡조 읊은다. 그 소리에 저너머 자하산, 사슴 우는 소리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