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태식 칼럼](48)내 집 마련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2015-08-10 영주일보
우리 부부는 내 약값 쓰는 것 외에는 정말 한 푼도 헛되이 쓰지 않았다. 계(契)도 들고 적금도 부었다.
돈이 몇 만원 모였다. 그리고 적금을 부은 것이 한 일년 있으면 십만원 가깝게 될 것이었다. 속으로 이 집을 아버지와 흥정하여 사야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초가집이 열평 남짓 하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이 집을 사서 증명해야 한다는 내 나름의 오기였을 것이다.
하루는 어머니를 찾아 뵙고 운을 떼었다. “어머니, 제가 사는 집 말입니다. 이 집은 큰형님이 오래 사시다 떠났는데 잘 관리하지 않아서 지붕은 골이 패이고 문짝은 떨어지고 마루는 헐어서 헛간처럼 되었습니다. 나도 제 집이 아니니 형님보다 더 잘 손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집이 못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파십시오. 어차피 제가 떠나지 않으면 어머니도 반쪽밖에 세 놓을 수 없고 세라야 얼마됩니까? 팔아서 그 돈을 이자주면 집이 헐어 수리할 걱정 안하고 이득은 세 받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습니까?” 하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솔깃해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서 장모 소상을 치렀다가 호되게 곤욕을 치렀고, 땅세 내느라 꽁지빠졌고, 전기 시설한다고 애먹었으며, 지붕덮느라 골탕먹었다. 온갖 설움을 톡톡히 본 이 집을 내가 꼭 사서 보란듯이 내 물건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어머니와 매매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 본심을 알 턱이 없다. 계산이 빠른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였다. 며칠 후 어머니가 ‘저번에 말한 것 아버지가 아무렇게나 하라 하신다’고 허락하였다. 나는 어머니와 또 흥정을 하였다.
“제가 가진 돈은 5만원 밖에 없으니 매매계약서 작성할 때 5만원 받으시고 잔액은 섣달 그믐날 받으십시오, 만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이자를 몇 달치 물겠습니다. 잔금도 몇 달 내에 다 갚겠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받으면 이자를 놓아야 하는 것이니 아들에게 이자돈 몇 달 빌려준 셈 밖에 안됩니다.”고 하였더니 이 조건을 받아주셨다.
자형과 둘째 형님 모시고 아버지와 집 매매계약서를 썼다. 몇 달전에 바로 옆집이 팔렸으니 남의 전례에 준하여 가격은 정하였다. 값을 15만원으로 정하고, 소주를 됫병으로 사다가 흥정조로 마음껏 잡수도록 권하였다.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부모에게 보인 첫 일이었다. 아무리 헐어빠진 초가 흙집이지만 나도 이 동네에서 집을 소유한 어엿한 집주인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이 집에서 무슨 굿을 하여도 누가 감히 트집잡지 못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좋고 어깨가 으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