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영 칼럼](11)사월이면 아리다

2013-04-25     양대영 기자

사월이면 아리다


-한희정-


별안간 우리 마을에 총소리가 들렸다네,
맨발로 뛰쳐나온 알녘집 삼촌
옷섶에 핏방울 같은
동백꽃이
졌다네.

“낭도 총을 맞안, 옆갈니에 총알 맞안.”
단발머리 속적삼 깊이
흉터 다시
살아나,

한 땀이 서툰 바느질에 손 찔린 실밥처럼
까닭 없이 죄도 없이 총을 맞은 나무처럼
뭉툭한 흉터 하나가
사월이면
아리다.

영화 지슬이 화제다. 60여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이 겪은 참혹상에 대해 분위기를 전달하기에 족하다. 말로만 듣던 4.3사건을 영상물로 재현해 제주도민들에게 관심을 모았다. 깊은 상처가 주는 마음의 무게는 오래가게 마련이다. 제주의 현대사에서 4.3사건이 주는 아픔은 전 세계의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이 보다 더 비극은 없을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채 300가구도 안 되는 자그마한 한 동네에서 하루저녁 제사집이 30여 곳이 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 것을 보면 그 잔혹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제주도의 젊은이들은 이런 아픈 상처를 겪은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숨죽이며 들려주는 4.3의 참상을 접하며 자랐다. 제주의 문인이라면 누구라도 4.3을 소재로 한 작품 한편 정도는 반드시 썼을 것이다. 4.3사건이 그만큼 아픈 역사이기 때문이리라.
산남 산북 할 것 없이 4.3당시 인명 피해가 컸다. 중산간 소개령을 내려 주민을 피신시키고 주택을 불사르는 일이 벌어졌다. 비공식적이지만 제주도 인구의 1/3이 화를 당했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한희정 시인은 서귀포가 고향이다. 시집 『굿모닝 강아지풀』에서 뽑았다. 그는 그래서 4월이면 아리다고 했다. 4.3때 무차별 총격으로 아무 죄없는 나무가 옆구리에 총을 맞은 것처럼, 그렇게 아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