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륙교](4) 사람 사는 세상

이금옥 시인

2024-01-23     이금옥
이금옥

제주의 겨울을 맞으며
어릴 때 읽은 동화 속 나라를 떠올려본다.
바람을 아우르며 굽이굽이 이어진 돌담 안에는
양배추며 브로콜리 콜라비 등
온갖 채소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고,
차가운 바람결에 동백은 더욱 붉어진다.
절기상으론 엊그제 대한을 지났으나
아직은 한겨울 인데,
가는곳 마다 유채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풍경을 폰에 담아 육지의 친구에게 보내면
"너는 딴 나라에 살고 있다"고 부러워한다.
며칠 전 걸었던 서귀포 바닷가엔 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철 지난 감국도 노랗게 피어있어
꽃들이 계절을 잊었는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다!

제주에서 맞는 다섯 번째 겨울.
제주 할머니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은 건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가 좋은 것인지는 아리송하다.

이제 8살이 되는 손주가 제주에 너무 가고 싶어 해
항공사의 비 동반 소아 서비스를 이용해서
비행기를 태워 보내겠다는 며느리의 전화다.
아들 내외 바쁜 건 이해하나 걱정이 한라산보다 높다.
충분히 교육 시켰으니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믿어보라 한다.
평소 며느리의 교육방식을 신뢰 하지만,

비행기 도착 한 시간 전에
공항에 가서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
드디어 애를 데리고 나온다는 승무원의 전화가 왔고,
어른들 사이로 의젓하게 걸어 나오는
손주를 보니 감격 이었다!
지정된 보호자의 신분증을 보여주고
애가 잘 왔다는 사인(sign)도 해주고
돌아가는 승무원에게 허리 굽혀 절을 했다.

아이는 신분증이 없으니, 등본 한통 접어 넣은
표찰을 목에 걸고 캐리어 하나 끌며 제주까지 날아온 것이다.
옆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며
과자도 주시고, 승무원 누나가 초코렛도 줬다고 자랑이다.
푸른 바다를 끼고 집으로 가는 길,
“이제 할머니네 세상으로 건너 왔네요.

손주가 가고 싶어 하는 곳
우리가 보여 주고 싶은 곳을 다니며
그렇게 행복한 2주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집으로 돌아 와야 된다는 제 아빠의 전화를 받고는
"이제 우리들 세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다시 등본 한 통 목에 걸고 승무원을 따라가는 아이가 신기해
돌아서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엄마 이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 왔네요"
그렇게 8살 아이는 할머니네 세상으로 건너왔다가
원래의 우리들 세상으로 돌아갔다.
이 8살 아이의 세상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무한 신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 보석 같은 동심이 믿는 우리들 세상,
원래의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가족과 이웃과 그리고 5년간 다녔던
유아원과 유치원 선생님들께 무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유치원 버스를 타고 선생님을 따라 가듯
승무원 누나를 따라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온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바르게 잘 살아야겠다.
자라나는 저 해맑은 아이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제주의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자연을 항상 기억하고
할머니네 세상을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작가소개] 이금옥 시인

1955 년생
2019.9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
2023.10 제주 감성시 백일장 동상 수상
현 시조문학 도란도란 회원 활동 중
현 감성시 회원 활동 중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시를 읽고. 시조를 쓰면서
제주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취색 물빛이 아름다운
금능 바닷가에 5년째 살고 있으며,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은 날마다
한편의 시가 되어 내게 다가 옵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가슴을 파고 들어
두팔 들어 가득 품어 안았습니다

돌아보니 수평선에
내가 안겨 있습니다

돌고래도 갈매기도

같이 안겨 있습니다

내 인생이 모두 안고 흘러 갑니다
탐라도 같이 안겨 흘러 갑니다

고맙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동반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