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의 놀멍 걸으멍](16) 눈 속에서 맞는 동지(작은설) 풍경 스케치

“선래왓 절에 가는 길”

2022-12-26     김도경 기자
“선래왓

제주시에서 번영로로 가다보면 선진안길이 나온다. 시내와 다른 체감온도를 느끼며 눈 내리는 결빙된 삼거리에서 망설였다. 좌회전으로 내리막길을 가기에는 무모하다는 생각, 직진해서 유턴하다보니 차 세울 공간이 보였다. 이곳부터 선래왓 절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미끄러워 조심하는 발자국 소리를 개가 용하게 들었나 보다. 길가 주택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싸락눈이 바람에 실려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24절기 중에 22번째 절기인 동지, 새해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절로 나선 길이었다. 나는 신심 있는 불자는 아닌 것 같다. 사시 기도시간이 되었는데도 놀멍 쉬멍 눈 맞는 재미에 푹 빠져서 걸었다.

“선래왓

선흘2리(양잠단지)버스정류소 유리벽에 ‘제주시 조천읍 람사르습지도시’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청정 생태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굽어 돌면 ‘선흘2리회관’, 옆에는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이 있었다.

대문 없는 선인분교장 정문 양옆으로 돌하르방이 지키고, 그 안쪽에는 동백나무가 한 그루씩 돌하르방을 호위하듯 서있었다. 어린이들의 안전과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해 외부인 및 반려견 동반한 학교 내 출입을 통제한다는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 안내문이 있었지만, 몇 발자국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학교 운동장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며 눈이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선래왓

동쪽을 향해 선흘2리 중앙동길을 걸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길 양쪽으로 눈이 소담하게 쌓였다. 그때 소형차 한 대가 내 옆으로 섰다. 걷기 힘드시면 타라는 아주머니 말에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며 걷는 것을 자처했다. 내친김에 눈을 마음껏 맞고 싶었다.

몇 년 전 절에 올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있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들과 도시형 건물이 공존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제주 외곽지역, 산간지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은 개발현장이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타운하우스 진입로 억새밭에도 눈이 펑펑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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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편지함이 안내하는 절 입구, 동지기도에 참여하신 신도들 차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절 마당 한켠 모셔진 반가유상 부처님께서도 눈을 맞고 계셨다. 눈보라 속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 사진을 찍으며. 짧은 생각으로 실수의 연속인 자신을 들여다봤다.

차밭 너머의 야산과 어우러진 풍경을 눈에 넣으며 절 안으로 들어섰다. 네모난 연못을 둘러 ㄷ자 형으로 지어진 법당, 연못으로 눈발이 휘몰아쳤다. 그 속에서도 유유자적 헤엄치는 금붕어들을 보며 혹한의 날씨에도 보이는 곳, 보이지 않은 곳에서 각자의 생을 살아내고 있을 생물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선래왓

자파리하다가 뒤늦게 도착한 법당에 스님과 신도들은 기도를 하고 계셨다. 죄송한 마음으로 동참하면서도 마음이 바깥으로 향했다. 법당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스님은 법문에서 동짓날 추우면 일 년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며, 어려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초기 불교경전에서 유래했다는 한국의 구토설화인 ‘토끼전’의 토끼를 예로 들며 사람이 실수를 안 하고 살면 좋겠지만, 만약 실수를 했더라도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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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기도 후에는 팥죽 먹는 것이 별미이자 동지의 의미를 더해준다. 팥죽과 팥떡을 맛있게 공양하고 이웃과 나누라며 보살님이 손에 들려주는 팥죽과 떡, 과일을 들고 다시 차 있는 곳까지 걸었다.

세계자연유산마을 ‘선흘2리마을 산책로’ 주변에는 우진제비오름, 탐라신화공원, 도깨비공원, 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 등 일정에 맞춰 돌아볼만한 곳이 많다.

눈 쌓인 하얀 세상에서 하얀 눈을 맞으며 2023년에도 하얀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얀 마음, 그 기준이 모호하지만 양심을 우선에 두고 성실하게 사는 삶이 아닐까 내 기준을 세워봤다. 눈 속에서 맞는 동짓날 새해 다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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