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신의 벌랑포구](37) 누에

나희덕 시인

2021-11-15     김항신

누에

나희덕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2004
 

나희덕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 1989년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등

<수상>
* 2001년 김달진 문학상 외 다수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항신

시인의 눈에는 세 자매로 보였던 것이다.
등 굽은 어머니와
훌쩍 커버린 두 딸과 다정하게 손  잡고 걸어가는 어머니 의 모습,
누에처럼 작아진 저 작은 등에서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 내듯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뽑아내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훌쩍 자란 두 딸이 텅 빈 누에처럼 작아진 어머니를 감싸며 걷고있다.

그 비단실에 휘감겨 따라가며
만삭이 된 배 쓸어안아본다 .[글 김항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