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신의 벌랑포구](34)거대한 아가리

황인숙 시인

2021-10-25     김항신

거대한 아가리


황인숙


나는 죽은 그이들의 사진을 본다 잡지와 새로 나온 책
벽보판 위의 신문에서
나는 낯설게 그이들의 낯익은 얼굴을 본다
문득 그이들의 말이 활자체로 떠오른다
쉼표, 따옴표, 마침표, 물음표...... 지나간 말들
목소리, 목소리, 말의 초록물 돌아오지 않는다
까마득한 구름, 목소리의 입자들 비가 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손바닥을 입에 대고
아아! 아아! 소리쳐본다
바람은 참으로 재빠르구나 따뜻한 입김, 그 목소리
까마득히 날아가버렸다
나는 홀연 뼈다귀처럼
인적 없는 바람 속에 던져진다
그립고 낯선
목소리의 망령들, 목소리의
납골당, 그 난바다.


《꽃사과꽃이 피었다》시선집, 문학세계사 2013
 

황인숙

<황인숙 시인>

1958년 서울에서 출생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등단.
동서문학상, 김수영문학상 등 수상.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리스본행 야간열차》등 다수 .

 

김항신

손바닥 입에 대고
아아아! 소리쳐보지만
바람은 참으로 재빨라
따뜻한 입김, 그 목소리는 까마득히 날아가버렸다.
홀연히 뼈다귀처럼 아가리 속에 던져진 바람의 자식,
그립고 낯선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지만
초록물의 아우성, 슬픔과 아픔들은
그립고 낯선 영령들은
백령도에서
팽목항에서
인적 없는 바람 속에 서성이다 서성이다가 비가 돼도 떨어지지 못하는 슬픈 목소리의 납골당, 그 난바다 
아직도 묵묵부답 낯설다.  [글 김항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