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가 있는 목요일](42) 얼굴

정운 시인

2021-09-16     구수영

■ 극순간의 예술 디카시감상 

 얼굴


기억을 더듬으며
시멘트 징검다리 건너다가
그리려던 그 얼굴이
강물에
와르르 쏟아져버렸다.


     - 정운

정운

<정운 시인>

충북 제천 출생 서울거주
공무원 퇴직 현 번역가
시사모, 한국디카시인모임 동인



 

 

구수영

어떤 사물이나 장소를 만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특별한 경험으로 이어지고 이것을 우리는 추억이라 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은 마음을 풍요롭게 합니다.

오늘 디카시는 징검다리입니다
징검다리 는 시 소설 등 문학작품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장소지요 
징검다리 스토리의 최고는 소설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이사 온 소녀와 시골 소년의 순수하고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의 시작은 징검다리였지요
오늘 찍힌 시를 보십시오 
이 징검다리는 돌이 아니라 시멘트 입니다. 정운시인 은 저 징검다리에서
소년과 소녀를 만나고 싶었을 겁니다. 어쩌면 소년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겠지요.
돌이 시멘트로 바뀌며 아름다운 추억도 다 쏟아져 버리고 그곳에는 반백의 낯선 남자
얼굴만 보입니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극적 순간을 잡아 영상과 언술이 합해진 것입니다
사물이 던져주는 극순간의 언어 그곳에는 시인의 상상력이 숨어 있지요 
그 상상을 찾아내고 또 나만의 상상을 해 보는 즐거움 그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하나 더 꺼내보겠습니다.

1961년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가 주연한 영화 '초원의 빛'입니다 
홍역처럼 찾아온 첫사랑을 앓고 난 후
여주인공 나탈리 우드는 사랑했던 워렌 비티를 찾아갑니다. 그는 이미 결혼을 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지만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지요.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탈리 우드의 독백은 이 영화의 백미 입니다.

'사랑은 젊은 날 우리를 휘몰아치고 간
소나기인걸..'
함께 자막으로 뜨던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 '

-한때는 그리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

지나간 순간은 돌아올 수 없지만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시간을 내서 양평 서종 '소나기마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쯤 소년이 소녀에게 꺾어 주었던 마타리 꽃이 유황처럼 피어 있을
겁니다. 마타리 꽃 예쁘지만 냄새가 아주 고약한 거 아시지요? [글 구수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