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신의 벌랑포구](26) 어느 슬픈 날

김순선 시인

2021-08-30     김항신

어느 슬픈 날

김순선

수목원을 나오다가
지친 발을 쉬려고
길가 허름한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집은 언제 문을 닫았는지
간판도 내려지고
화분엔 잡초가 무성하다

인생의 바닥을 치고
집기도 거두지 못한 체
쫓기듯 떠난 사람들같이

황망하게 떠난 그 사람
어수선한 마음에 불쑥 찾아와
멍하게 앉아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새까만 버찌 하나
또르르
내 앞으로 굴러와
말똥말똥
웃는다


《따뜻한 국물이 그리운 날》열린문화 2021
 

김순선

<김순선 시인>

1951년 제주 사계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졸업
2006년<제주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하면서
시집으로 《위태로운 잠》,《저, 빗소리에》, 《바람의 변명》, 《백비가 일어서는 날》
ebook
《사색, 책의 향기가 우리를 부를  때》
현재 <한국작가회의 > <제주작회의 >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항신

제가 2018년도에 선생님의 네 번째 시집 '백비가 일어서는 날'처음으로 받게 된것 같습니다.
그때는 시집을 받고 읽다가 내 마음의 갈피에 들어서면 색종이 접듯 밑부분을 삼각 표시하며 고이 접어두었던 세월에 다시 한번 눈을 맞춰 보다가 며칠 전 따뜻한 그리움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나를 불러내는 것 같아 ' 어느 슬픈 날'의 수목원 산책 길로 걸어 봤습니다.
예전에 저도 그 허름한 나무의자가 있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간판 내린 앞을 지나던 그 자리가 눈에 보이는 듯
하네요.
'인생의 바닥 ' 그렇지요. 우리네 인생사 앞 길을 순탄하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럴 수 없기에 바닥을 치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쫓기듯 떠나기도 하고...,

어느 슬픈 날에
황망하게 떠난 그이를 생각하며
수목원을 나와 지친 발 쉬며 멍하게 앉아
있을 때, 툭 어깨를 치는 새까만 버찌 하나 또르르
굴러오더니

말똥말똥 웃으며 서있는
그리운 당신 '괜찮아'라고 하듯
토닥이는 그대에게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김순선 선생님 힘내시고요~
다섯 번째 시집 출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글 김항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