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신의 벌랑포구](21) 누구도 그가 아니니까

허연 시인

2021-07-26     김항신

누구도 그가 아니니까

허연

누구도 그가 아니고
그와 비슷하지도 않으니까

일터에 간 자식이 돌아오지 않거나
수학여행 간 자식이 오지 않은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말을 걸 수 없을 테고
눈을 볼 수 없을 텐데
밥 먹고
게임하고
늦잠 자는 것도 볼 수 없을 텐데

그건 어떤 걸까
어느 한쪽 편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겠지
왜냐면
그가 답을 안 하는 걸 테니까

답이 없는 건
냄새도 소리도 웃음도 없는 거니까
그를 되돌려놓을 수 없는 거니까

몇 날 며칠 바닥을 구르고
몇 끼를 굶고 잠을 안 자도
그는 오지 않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가슴이 온통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리니까
두 다리로 설 수도 없을 테니까

누구도 그가 아니고
그와 비슷하지도 않으니까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문학과지성, 2016.
 

허연

<허연 시인>

서울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집《불온한 검은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 》가 있다.
현대문학상과 시작작품상 수상.


 

김항신

누구도 그가 아니고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다.
허연 시인, 이름만큼은 낯설지 않다고나 할까. 하나도 모르면서
서점에 신간 시집 배열 차 들렀다가 눈에 띄어서 한 권 구입.
자기만의 색깔들이 있듯이 시인의 시 흐름이 나이를 가늠해주는 반면 꾸밈없이 아픔들을 진솔하게 풀어내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시인, 다른 시집들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지만《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에 실려 있는 69편의 시들을 보면 눈물을 심어놓지 않은 게 없다.
허연 시인과 같이 등단하고 발문을 쓴 박형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 이곳에선 모든 미래가 푸른빛으로 행진하길' 그러면서 ' 허연의 시를 처음 읽던 때'를 기억한다. 그러고는 허연의 다른 시집 《불온한 검은 피》에서 '권진규의 장례식 '를 평설 하면서
'연이의 시에 대한 첫인상은 김종삼의 후신이라 느껴질 정도로 담백하고 슬픈 기운이었다고 하며 다른 시편 들과 연이어 마지막 본 시집 몇 편을 발문으로 묶어 놓으면서
' 이 소년의 앞날이 그의 시구대로 '모든 미래가 푸른빛으로 행진' (<열대>) 바란 다고 끝을 맺는다.

누구도 그가 아니고
누구도 내가 될 수 없지만
어떤 사연으로도 알 수 없는 그 안에 물의 흐름은 영원할 것이라고 본다.

8.15 해방이 그렇듯
6.25가 그렇듯
4.3이 그렇듯
천안함, 그리고
세월호가 그렇듯
가슴속 영원히 잠재해 흐르는
아픔.
어찌 그 아픔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영원한 아픔을....,

[글 김항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