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의 포토에세이](14) 광령 8경에서 신선이 되어

양순진 시인

2021-05-30     양순진
무수천

제주에서 태어나 줄곧 제주에 살면서 애월읍 광령리 광령교를 수없이 지나쳤다. 귀에 박히게 들어온 무수천(無愁川) 말이다. 서귀포를 가면서, 무릉을 가면서, 고성 극락사를 가면서 지나치기만 하던 그곳 너머 그토록 숨막히게 아름다운 비경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토요일 아침, 모자와 양산 쓰고 운동화 신고 광령교로 출발했다. 광령리 탐방이라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다. 늘 지나쳐온 곳이어서 마을을 순례하는 정도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광령교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제주 시내가 훤히 보이고 새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길 따라 들어서니 긴 계곡이 드러나고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마치 오라동 방선문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바위에 한시가 있고 없고 차이뿐 비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무수천

안내문에 보니 '무수천이란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절벽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속세의 근심을 잊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냇가의 양쪽 석벽이 기괴하고 험하여 경치 좋은 곳이 많다.'라고 <탐라지>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무수천 8경은 1~4경은 광령교 아래, 5~8경은 광령교 위쪽으로 위치해 있다. 1경은 오해소의 대낮 풍경, 2경은 매모루 높은 돌 위로 비치는 달빛, 3경은 용눈이굴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4경은 들렁귀소에 떨어지는 폭포, 5경은 돌 바위로 덮인 청와정의 모습, 6경은 창곰돌래(우선문)라는 신선이 드나들던 곳, 7경은 진소도(장소도)라는 소에서 물놀이 하는 광경, 8경은 천조암의 바위와 깊은 소의 낭떠러지 풍경이다.

하루가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제주에 숨겨진 비경에 취해 속세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큰 바위와 돌로 이루어져 조금은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아무도 없는 계곡에서 모든 시름 잊고 신선처럼 보낸 시간이었다. 뱀딸기와 올챙이, 장구벌레와 소금쟁이가 노닐던 못에서 향수와 추억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무수천
무수천
무수천
무수천
무수천
무수천
무수천
무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