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 포토에세이](12) 오일장은 살아 있다

양순진 시인

2021-04-24     양순진
제주시오일장

  오일장 가려고 마음 먹은 날 아침,  느닷없이 비가 쏟아진다. 그러나 처음으로 가 본 오전 아홉 시의 제주시 오일장은 생생하다. 퇴근 후 저녁에만 들렀기에 저녁 오일장 분위기는 익숙했지만 상상을 뒤엎는 오전의 오일장 분위기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텅 비었으리라 상상하며 느긋하게 들어섰는데, 더군다나 비가 쏟아지는데, 신축 주차장도 가득, 주변 주차장에도 가득, 시장 안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비가 오든 말든, 코로나가 술렁거려도,  경제 위기에도, 생활은 꾸려야 하고 밥은 먹어야 하니 2일, 7일이 들어가는 오일장은 필수 코스인가 보다. 나도 꽃이나 물고기 사러 가던 예전의 낭만적인 방문에 비해 반찬거리며 아들과 남편의 편한 여름 옷 고르러 갔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 몰려들었는지 모른다. 추억이 그리워 모여들었는지 모르겠다. 멸치국수나 오뎅 국물처럼 따뜻한 온기가 못견디게 그리워 정겨운 곳으로 마음과 몸을 옮겼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 갔던 시골 오일장은 농산물을 팔고 그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사곤 했다. 어머니도 손수 거둔 깨와 마늘 등을 팔고는 내가 좋아하는 귤과 과자들을 사주곤 했다.

제주시오일장


  오일장은 무엇이든 팔고 새로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걸 깨달은 어느 날, 어머니께 간절하게 부탁드렸다.
  "술 먹는 아버지는 장에다 팔고 술 안 먹는 아버지 사다 주면 안 되요?"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대학 들어갈 때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어미소를 팔고 입학금을 내주셨다. 내가 시인이 되어 그 경험 그대로 '아버지의 소'라는 시를 썼는데 지금 제주시 정류장에 새겨져 있다. 그때,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해준 제주시가 고마웠다.

  오일장 입구에 서 있는 돌하르방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를 지켜주었듯이 돌하르방은 제주를 지켜줄 것이라 확신한다. 꽃시장, 어시장, 옷시장, 과일시장, 농산물시장 모두 살아났다. 문득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밤만 되면 전시되었던 모든 전시물이 살아났던 장면들 말이다. 힘든 시기에도 파다파닥 뛰는 생선처럼 생동감 있는 오일장 풍경을 보며 그 상상 초월한 환상의 스토리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소리친다.

  "오일장은 살아있다!"

[양순진 시인] 

제주시오일장
제주시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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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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