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의 포토에세이](6) 능수벚꽃과 증기기관차

양순진 시인

2021-03-21     양순진

  놓칠 뻔 했다, 능수벚꽃과의 재회를. 잊을 뻔 했다, 증기기관차의 꿈을.

  해마다 이맘 때쯤 찾는 곳, 제주시 삼무공원. 아니 아침 산책 장소로 친숙한 그곳. 올봄엔 장거리 학교 생활에 빠져들다 보니 산책이나 운동을 등한시 했다. 개인적 낭만보다는 아이들 얼굴 익히고 이름 외우고 마음과 가까워지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러는 사이 여기 저기서 벚꽃 소식이 들려온다.
  "능수벚꽃 볼 만 하게 피었던데..."
라고 넌즈시 알려주는 남편 말에 아차 하며 운동화 꺾어 신은 채 핸폰 들고 삼무공원으로 뛰쳐 나갔다.

  다행이다. 활짝 피어 있었다. 비 오면 금방 지고 말 벚꽃과 능수벚꽃이 분홍색으로 찰랑거리고 있었다. 노란 잠바 입고 거니는 아주머니, 능수벚꽃 찍어대는 연인,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위로 분홍새가 휠릴리 휠릴리 노래하는 것 같았다.

  가장 기뻐하는 것은 바로 앞에서 사계절 내내 기다린 증기기관차 미카이다. 1978년 어린이 날, 기차가 없는 섬에 어린이들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선물한 것인데 배두리오름(別頭里岳)이던 삼무공원(三無公園)에 세웠다. 능수벚꽃 피는 이 때 증기기관차도 함께 빛난다. 달리고 싶은 꿈에 부푼다.

  그러나 벚꽃은 필 때 지는 걸 염려하며 아쉬워 해야 하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 남송의 시인 양만리가 처음 사용했다는 이 말은 '꽃이 붉어도 열흘은 못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초조했는지 모른다.

벚꽃은 흔하지만 능수벚꽃은 그리 많지 않다. 수양벚꽃, 실벚꽃이라고도 불리며 어떤 지역에선 처진올벚, 처진개벚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꽃말은 '뛰어난 아름다움, 정신의 아름다움, 절세미인'이라 한다.
  가까이 있는데 그 최고의 장관을 보지 못한 봄은 억울하기에, 무사히 그 분홍의 찰나를 포착한 이 기쁨이란!

  양만리의 시를 '꽃이 피어도 열흘을 못 간다고 하지만, 이 마음엔 봄바람 불지 않는 날 없네.'로 바꿔 읊으며 분홍과의 영원한 교류를 꿈꾼다. 화무십일홍을 화무영원홍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