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비](11) 힘을 빼야 할 때

박미윤 소설가

2021-03-17     박미윤
박미윤

글을 쓰면서 내가 뭔가에 대해 어렵게 설명하려고 하는구나, 느낄 때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광령 새마을 문고 작은 도서관에서 강의해달라는 문의를 받았을 때였다. 나는 강의 주제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쓰기>로 정하고 자료 준비를 시작했다. 다 아는 얼굴들이 강의를 들을 거라서 편한 분위기겠지만 신변잡기나 늘어놓고 뜬구름 잡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으로 도서관에 틀어박혀 몇 달 동안 강의 내용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강의가 있던 날은 조금 일찍 도착해서 문고 회장님과 회원들이랑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예지아빠가 오늘 과수원에서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를 봤는데 알을 훔쳐가려는 줄 알고 비둘기 엄마가 자기한테 덤벼들더라며 사진을 보여주기에 그 얘기 소설에 써먹어도 되겠냐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회원들이 받을 유인물은 챙겼지만 내가 정작 강의하려고 준비해놓은 파일은 집에 놔두고 왔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집에 두고 온 강의 파일에는 도서관에서 며칠 동안 여러 책을 읽으며 자료 조사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에 대해 고찰한 심리학자들의 이름과 이론도 간단히 소개하고 왜 요즘 인문학이 뜨는가 진단도 내리고 그럴 예정이었다.

그러나 내 가방에 강의 파일이 없다는 걸 알아챈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기 시작했다. 몇 번 파일 메모를 보면서 연습도 했건만 한 시간 강의를 다 채우지 못할 거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준비한 파일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집어먹고 놔주지 않아 앞이 캄캄했다. 나는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어차피 강의 주제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글쓰기>이므로 말주변은 별로 없지만 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자 비로소 마을 주민들 얼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구차한 내 인생 이야기가 펼쳐졌다. 사범대학생 때 연극으로 빠져서 학점은 엉망이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졸업하던 해에 임용고시가 처음 실시 됐고 데모하느라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빙긋이 웃기 시작했다. 나의 숨겨진 인생사가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어떻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나'를 치유했는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준비했던 파일 속 내용 몇 가지가 또렷이 기억났다.

그러나 머리에 떠오른 몇 가지 자료의 파편들은 새로운 강의 내용과 흐름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강의는 벌써 내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들을 어떻게 꺼낼 것이며 그것들이 타인에게 접해졌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게 될 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강의 전에 커피를 마실 때 예지아빠가 보여주었던 사진과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알을 품고 있던 어미 비둘기가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자 알을 훔쳐가려는 줄 알고 날개를 퍼덕이며 덤벼들더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주민들과 같이 공유했다.

'내'가 경험한 것을 의미화시키면 이것이 훌륭한 스토리가 되고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고 있을지라도 훗날 이것이 내 글쓰기의 자산이 되리라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더라는 얘기들을 했다.

유인물에 들어있는 직접 써보기를 하고 정리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강의를 마치면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열심히 준비한 파일을 집에 놓고 와서 두서없이 내 신상만 털었노라고. 웃음소리가 커졌다. 박수 소리가 들리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에 힘이 쑥 빠졌다.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책을 낸 작가입네 하고 어려운 얘기들을 하려던 게 잘못된 방향이 아니었을까.

그때의 경험이 소설을 쓸 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내가 자꾸 어렵게 설명하려는 부분이 나타나면 ‘어이, 박 선생, 너무 힘 들어간다, 힘을 빼시게’하고 옆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