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롬이야기](52) 몽골 ‘속주의 땅’이란 의미의 모지오롬

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2021-01-01     문희주

- 몽골어 또 다른 의미 ‘불규칙적, 비일상적 모습의 괴상한’ 오롬 -

번영로에서

2021년 1월 1일. 지난밤까지 내린 눈 속에 모지오롬은 편안할까? 어찌 변했을까? 묵은해를 보낸 새 날 아침에 모지오롬을 찾는다. 번영로 나가는 길 한 켠에는 눈 속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서 거북이처럼 엉금거리는 모양으로 기어서 모지오롬을 마주한다. 눈밭에 누워있는 모지오롬은 진록의 모습으로 그 모습이 변치 안하였다.

표선면 31개 오롬 중 9개 해변오롬과 가시리 13개, 성읍리 9개 등 22개 오롬은 중산간에 소재한다. 모지오롬은 크게 A.영모루(영주산)-B.대/소록산-C.번널/병곳오롬을 잇는 삼각점 안에 있다. 또한 작은 삼각점은 a.모지/장지-b.새끼-c.따라비 등 9개 오롬에 연해 있다. 아직껏 모지오롬은 따라비는 할아버지, 모지는 어머니, 장자, 새끼오롬은 일가로 전해 왔지만 제주 오롬 이름을 찾는 과정에서 스토리텔링 하며 잘못된 것이다. 이번 기회에 녹오롬, 따라비오롬의 실체를 찾았듯이 모지오롬 이름의 의미와 역사를 되찾고자 한다.

몽골(원나라)이 고려와 관계를 맺은 건 70여년이며 원나라가 약화되며 고려는 명나라와 국교를 맺게 된다. 그러나 제주도는 30여 년 간 몽골관리들의 세력 하에 있었다. 이때에 고려는 제주에 거주하던 몽골자손들에게 후금(몽골족이 다시 세운 나라)을 치는데 사용할 군마 징수를 명하는 과정에서 몽골 자손들은 고려가 파견한 제주목사를 죽이고 목호의 난을 일으킨다. 이에 고려는 최영장군이 이끄는 여명연합군을 제주로 보내어 난을 진압하고 제주를 접수한다.

편백나무

몽골은 제주의 왕뫼(지금껏 대왕산이라 부르는 ‘대왕’도 칭기즈칸=몽골왕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에 몽골총관부의 수장인 다루치가 소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를 10개 마장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제주의 행정구역과 비슷하다. 제주의 10개마장+3개(대정읍 지경, 우도, 성산읍) 중에 성산읍은 아마도 다루치 직할마장이었던 걸로 사료된다.

그런데 직할마장이인 성산에서 풀을 따라가다 보니 표선지경인 A.영모루(영주산)-B.대/소록산-C.번널/병곳오롬 지경까지 넓혀져 작은 삼각점인 a.모지/장지-b.새끼-c.따라비 9개 오롬까지 점차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증명이 곧 모지오롬의 ‘모지’라는 명칭이다. 모지오롬은 한자로 모지악母旨岳, 무지악茂枝岳, 모자악母子岳 등오로 쓰였졌다.

여기서 ➀모지母旨는 어미모母, 맛있을 지旨인데 이는 맛있는 음식, 아름답다, 선미善美하다는 뜻이나 다만 한자를 빌어 몽골어를 음차音借한 것뿐이다. ➁무지茂枝의 무茂는 우거지다, 무성하다, 풍성하다는 말이고 지枝는 나뭇가지라는 말로 음차와 더불어 오롬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한 걸로 보인다. ➂모자母子는 어머니와 아들이란 말로 제일 후기에 표기된 걸로 보인다. 이는 모지母旨의 모와 무지茂枝의 지枝를 가지로 보지 않고 말굽굼부리를 어머니로, 알오롬을 아들子로 보고 표기 한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으로 모지오롬은 동북쪽의 열린 굼부리를 가진 걸로 알려지나 필자가 보기는 쇠스랑 같은 ‘ㅌ자’ 모양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무지茂枝’로 본 것이고, 가운데 혹을 떨어진 알오롬으로 보면 ‘모자母子’로 볼 수도 있다.

‘모지’는 ‘어머니 오롬’이란 뜻이 아님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모지’란 말은 어디서 왔을까? 울란바타르대학교가 편찬한 몽골-한국어사전에서 ‘모지МУЖ’는 ➀province (administrative division): 지방, 성, 주(오시주Ош муж, 추이주Чүй муж)②area: 지역, 분야, 영역, 면적 ③odd: 짝이 맞지 않거나 규칙적이지 않은, 또 일상적이지 않은 현상, 괴짜를 말하나 영어사전의 Odd는 속주屬州provincia로 본국 이외의 영토의 지방행정구획의 하나로 로마행정관이 활동영역과 권한이 미치는 영역을 가리키고 있다.

ㅌ자를

그러므로 ‘모지오롬’은 ‘a.몽골 속주의 땅’으로 ‘b.주위 오롬들과 달리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나라가 중국에서 밀리자 중국공산당이 밀려 타이완으로 들어가 자유중국을 세운 것처럼 원나라가 패할 때 제주도에 피난정부를 세우려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때에 여명연합군은 최영장군을 수장으로 보내어 몽골잔재를 싹쓸이하게 된다.

이 때 최영장군은 몽골인을 도륙하나 실은 제주인을 도륙한 것과 같다. 이들 중에는 다루치 일족으로 총관부를 이끌던 이들도 있으나 이미 제주이민 후 100년을 지냈다. 몽골이 고국이라 해도 가 본 봐 없었을 것이고 제주사람으로 자라나 3~4대에 이른다. 당시 제주 인구 3만일 때 몽골이민자는 1만2천인데 여명연합군은 1만2천을 이끌고 목호의 난을 진압한다.

모지오롬은 번영로에서 성읍2리 로터리로 가기 직전 10여 미터 앞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간다. 오롬을 향해 몇 백 미터를 들어간 후 넓은 밭이 나오는데 이곳 삼거리에서 직진(우회전 말고), 조금 더 나가면 된다. 오롬을 들어가는 곳에는 수리대나무, 후박나무가 길 양편에 가득하다. 입구부터는 편백나무가 우거진 300~400미터 쯤의 비탈진 숲길을 계속 올라야 한다. 때마침 비 온 뒤에 찾은 편백 숲은 향긋한 편백향이 코끝을 스친다.

비탈진 숲길을 다 올라갔다 싶으면 둘레 길은 아주 평평해 진다. 좌측 굼부리는 녹음이 가득한 데 우측으로는 편백나무 우거진 가을 길에 은백이 찬란한 억새 벌판이다. 가끔은 편백나무를 타고 오르는 붉은 망개열매나 가막살열매가 청홍백 삼색의 성탄 생 트리를 만든다. 소나무, 삼나무는 아주 일부이고 대부분은 편백나무이고 가끔은 사스레피 푸른 나무들 사이에 담팔수, 작살나무, 꽤꽝나무들은 이미 잎을 떨구고 겨울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편백나무-억새-가막살열매의

모지오롬을 먼 곳에서 보면 펑퍼짐한 신록이 평범해 보이나 속으로 들어가면 ‘짝이 맞지 않거나 규칙적이지 않은 또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이 괴짜라 생각 된다. 그래서 몽골어는 이런 모양을 ‘모지’라 한 것이다. 초보자들은 중간점을 지나면 돌아오는 게 좋다. 중간을 지나며 길은 점점 좁아져 사라지고 비탈이 계속된다. 길 없는 비탈길을 내려와도 길은 없다. 밭으로 나오는 길에는 가시덤불과 노루망, 철조망을 헤쳐서라도 탐사해 보려 해도 다시 붙잡히게 된다.

번영로에서 비자림로를 타고 해변 길로 가기로 했다. 모지오롬과 같이 가시덤불에 싸인 송당민오롬도 제주동촌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제주지방정부는 편의주의로 노루망, 철조망을 치면 다한 것으로 안다. ➀군사정부 때는 권력자들에게 빼앗겼고 ➁지금 와서는 ‘불하 한다’는 미명아래 매각 해 버리고 ➂남아 있는 것은 금지로 일관해 왔다. 서촌의 노형동이나 애월읍 인구는 5만인데 구좌읍 인구는 1만4천, 조천읍은 2만4천명이다.

동촌은 제2공항이나 용눈이, 비자림로 할 거 없이 무두 막혔다. ➃공공주택 하나도 배당해 주지 않으니 젊은이는 떠나가고 노인들만 남는다. ➄제주를 동서로 나누어 보면 동촌은 엄청나게 기울어진 땅이다. ➅이것이 다선의 국회의원을 몇이나 배출하고 6대 도지사 중 세 번이나 도지사와 현재 제주시장을 배출한 구좌읍의 암울한 실정이다. 기대할 수 없는 새해, 지방민의 바람을 모르는 시력장애자인 의원, 도지사, 시장의 뒤를 2021년도 따라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