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진의 시의 정원](39) 살아가는 소리들

2020-12-23     양순진
김광렬

살아가는 소리들

김광렬

적막을 찾아 숲속으로 갔다
적막은 어디서 고른 숨 쉬고 있을까

숲속에도 살아가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나뭇잎들 사르르 쉴 새 없이 바람에 흔들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햇살 반짝거리고
집을 빠져나온 개미들 어디론가 줄지어 가고
딱따구리들이 딱, 딱 나무를 쪼아대고
부지런히 풀 뜯던 수노루들
뿔 맞대어 싸우기도 하고
바람 타며 까마귀들 간간이 울부짖고 있었다

노동 없이 저무는 하루는 마치,
숨죽인 시간들보다 더 괴롭다는 듯


  - <존재의 집>, 천년의시작, 2020

양순진

시인에게 언어는 존재 인식 방법의 주춧돌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모든 현상을 언어로 엮는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 했고, 김광렬 시인은 일곱 번째 시집을 '존재의 집'이라 명명했다.

시를 통해 모든 관계 속으로 접속하고 소통하려 한 시인의 간절한 희망이 시편 곳곳에 숨어 있다. 모두 '살아가는 소리'다.

어느 날, 적막을 만나러 찾아간 숲속에서 나뭇잎 소리, 햇살 소리, 개미 소리, 딱따구리 소리, 노루 소리, 까마귀 소리에 파동을 감지한다. 소란을 피해 당도한 숲에도 적막보다는 노동의 비애를 발견한다. 아니, 노동의 거룩함을 깨닫게 된다.

  풀꽃도 산새도 나무도 정지해 있는 것은 없다. 모두 살아가려는 몸부림으로 천체가 흔들거리는 것이다. 시인의 노동은 언어로 그 흔들림을 받아적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가 반짝인다. 모래알에서 세계를 발견하고 개미에게서 우주를 발견하고 별빛에서 삶의 길을 찾기에. [글 양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