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으로
윤성택
눈은 도시를 배회하다가 어느 불 꺼진 창문 앞에서
주르륵 흘러내린다,
같은 영화를 또 볼 수 있는 사람은 영화가 그에게서
살아 본 적 있어서가 아닐까
사람이 그리울 때는 눈발이 가로등 불빛을 은은하게 어루만지는 새벽이다,
느낌은 훗날 어느 날을 꺼내와 잠시 여기에 나부끼는 것이다
추위는 몇 겹 추억으로 번들거리는 빙점에서 어두워진다,
겨울이
내게 와서 그렇게 녹는다
손이 따뜻한 이는 서늘해지는 자신에게 한 번쯤 울어본 적 있는 사람
카메라를 쥐고 있는 이는 제 시력을 천천히 순간으로 잃어가는 사람
시를 쓰는 이는 단 한 번 만난 자신에게 고요히 늙어버린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으로 사랑하는 밤,
한 사람이
네게 와서 상영되는 것이어서
오늘 밤 그 사람에게 눈이 내리는 것이다
- 윤성택 외, 모던포엠, 2019년 2월호
'비를 받아들이자'던 전혜린처럼 '눈을 받아들이자'라고 다짐하던 겨울이 있다.
비는 젖지만 눈은 가만히 운명의 어깨 위에 얹혀진다.
쓰지도 달지도 않은 눈의 맛을 기억하는가. 창밖에서 나부끼는 저 눈은 언젠가 나에게 울게하던 사람이 상영되는 것이고 마모된 추억의 끝자락이 너울거리는 것이며 시를 쓰다 늙어버린 사람의 눈빛이 이글거리는 것이다.
오늘밤 내리는 저 눈은 부정하던 날을 덮고 새로 쓰는 노트처럼 나에게 옮겨오는 흰 새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으로 사랑하는 밤의 분홍빛 연서다. (글 양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