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1:23 (금)
[오롬이야기](41) 서남이 높고 동북이 낮게 삐침이 져 가로 누운 비치미
[오롬이야기](41) 서남이 높고 동북이 낮게 삐침이 져 가로 누운 비치미
  • 문희주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10.18 2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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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송당에서 본 비치미자락과 개오롬
▲ 송당에서 본 비치미자락과 개오롬 @뉴스라인제주

비치미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255-1에 위치해 있다. 제주시> 번영로> 대천동 사거리>를 지나 성불오롬 삼거리에서> 리턴 하여 천미천을 지나야 한다. 천미천 다리에서 우측 방향으로 오롬을 보며 목장 길 따라 100m 조금너머 좌측 파이프> 울타리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 보는 목장 길 T자로 된 파이프> 끝, 돌담에 작은 철제 사다리>가 있고 철조망이 끊겨 있다. 여기를 넘어 삼나무 숲을 가로 질러 빨간 리본들을 따라 나가면 정상까지 갈 수 있다.

비치미는 해발344.1m, 비고109m로 높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면적으로는 구좌읍 41개 오롬 중 10번째가 되니 작지 않다. 비치미 정상에서 우측은 성읍, 좌측은 송당목장, 남측은 번영로와 성불오롬, 북측은 표선면의 오롬들로 둘러싸여 있다. 비치미 아래(남측)로는 삼나무, 위로(북측)는 소나무들이 있으나 정상에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그래서 비치미 정상에 서면 주위가 시원하게 열린다.

어떤 이는 비치미가 ‘꿩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하고 개오롬은 ‘나르는 꿩을 노려보는 모습’이라 한다. 어떤 이는 풍수지리상 ‘꿩이 날아가는 형국이라서 비치미'라 하나 자세히 보라, 어디를 봐도 꿩이나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당치 않은 말을 끌어다가 조건에 맞추고 합리화해보려는 견강부회이다. 본래 제주어를 모르고 음차한 것을 한자놀음으로 생긴 오해이다. 이런 일들이 제주오롬 명칭을 꼬여놓았다. 그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인용하여 더 깊이 꼬인 것이다. 필자의 오롬이야기는 이 꼬인 것들을 풀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성읍리에서 본 비치미
▲ 성읍리에서 본 비치미 @뉴스라인제주

이미 개오롬에 대해서는 앞서 기록한 바 있다. 개오롬은 정의군 성읍에서 보면 술시戌時(개시/7시반~8시반)에 해당하여 생긴 이름이다. 비치미의 비는 날을 비飛, 꿩 치雉자로 ‘꿩, 짐승이름, 땅이름, 키 작다’는 뜻이다-옛 사람이 ‘치雉자’를 음차로 사용한데는 ‘꿩 치雉자’로 보기보다 ‘키 작다’는 말로 이해하면 ‘낮게 기울어진 오롬’이라는 정확한 뜻과 발음을 동시에 만족 시키는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미는 ‘산山’을 일컫는 말이므로 ‘비치미’라 할 때는 ‘오롬’이라 덧붙이면 안 된다. 오롬의 모습을 볼 때, ‘개오롬’이 개가 아니듯이 ‘비치미’도 꿩이 아닌 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탐라지도병서』와 『제주삼읍도총지도』에 비치미는 ‘횡산橫山’, 『제주삼읍전도』에는 ‘횡악橫岳’이라 하였다. ‘횡’이란 ‘가로(동서/좌우/옆으로)놓이다, 눕다, 가로지르다’는 뜻으로 비치미를 의역한 말이다. 또한 『제주군읍지』는 '비치악飛雉岳, 『조선지형도』는 '비치산飛雉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역시 온전한 뜻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비치미’란 한국어에서는 ‘비탈지다, 경사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주어 ‘삐침’은 ‘한자부수漢字部首’에서 ‘삐침丿’을 일컫는 데서 나온 말이다. ‘삐침’은 글자의 획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내려 쓰는 것을 말한다. ‘삐침+오롬(메, 뫼, 미)=비치미가 된 것이다. ‘비치미’는 완전히 누워버리 횡橫이 아니라 비스듬히 비탈진, 경사진 모양에서 오롬의 이름이 나온 것이다. ‘비치미’ 이보다 정확한 오롬의 모양과 아름다운 발음을 동시에 만족하는 표현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미련한 후손들이 그 뜻을 오해하여 엉뚱하게 해석했을 따름이다.

비치미는 목초밭을 지나고 삼나무 숲을 지나야 한다. 삼나무 숲을 지나면 크지 않은 벌판이 보이는데 가을이 깊어가니 가막살나무와 찔레가 빨간 열매를 맺혔다. 지난봄에는 하늘거리는 하얀 찔레꽃과 가막살나무가 소담스레 하얀 꽃 피우고 그 아래로는 따스한 봄볕에 오랑캐꽃들이 도란도란 꽃 피우던 곳이다. 가을벌판에는 보랏빛 엉컹퀴, 노란색 개민들레와 미역취, 붉은 여뀌와 하얀참취 등이 키자란 잡초 속에 꽃을 피운다.

돌리미 정상에서 본 비탈진비치미
▲ 돌리미 정상에서 본 비탈진비치미 @뉴스라인제주

작은 벌판을 지나면 비탈길 솔밭을 조금 올라가야 한다. 삼나무 입구에서 부터 30분이 안되어 비탈진 등성이를 몇 발 오르면 이윽고 정상에 이른다. 비치미 정상에 올라서 남쪽을 보면 길 건너 초원 가운데 솟아 오른 성불오롬이 짙은 푸른빛인데 멀리 하늘과 맞닿은 파란빛 짙은 한라산이 보인다.

비치미를 오를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비치미 길이 헷갈릴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만 탐방할 것인지, 아니면 비치미-돌리미, 비치미-돌리미-작은돌리미, 비치미-개오롬 등을 연계할 것인지 계획하고 돌아 올 때를 생각하여 올라 온 곳을 표시 해 둬야 한다. 자기가 미리 표시해 두지 않고 다른 이가 부착한 리본을 보고 가다가는 헤매게 되므로 돌아 올 때 헤매지 않으려면 표시해 두고 미리 방향을 보고 출발해야 한다.

봄이 절정일 때 비치미를 찾았더니 경사진 오롬 곳곳에 붉은 철쭉꽃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가을을 맞은 비치미 정상 둘레 길에는 스크렁이 무릅 위로 스친다. 경사지에는 막 피어난 억새가 가을바람에 한들거린다. 비치미 정상에서 북편으로는 바로 앞에 돌리미오롬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개여기, 좌보미-알오롬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동편으로는 개오롬, 영주산, 서쪽으로는 송당목장과 민오롬, 거슨세미, 안돌, 밧돌, 체오롬 등이 겹겹이 보인다.

비치미는 북동쪽으로 기울어진 말굽형 굼부리를 이룬다. 오롬의 남서쪽은 높고 북동쪽은 낮은 측화산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비침이’란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이다. 비치미는 제주동부 일대 땅들이 대부분 검은 흙들인데 반하여 붉은 참흙인 것이 특별하다.

철쭉꽃핀 성불오롬 길 건너의 비치미
▲ 철쭉꽃핀 성불오롬 길 건너의 비치미 @뉴스라인제주

비치미를 오르는 남쪽 탐방로는 온전한 참흙 땅이다. 그러나 오를수록 점차적으로 참흙은 적어지고 붉은 화산재인 스코리아 혼합이 점차 많아진다. 스코리아는 지하의 마그마가 화산이 폭발할 때 1600도 이상 고온으로 지상에 분출될 때 생기는 화산 분출물이다. 비치미 북쪽은 돌리미로 나가는 북쪽 탐방로는 붉은 스코리아 쇄석물들이 굵은 덩어리로 가득하여 탐방로는 미끄러지기 일쑤다.

철쭉꽃 피는 비치미를 상상이라도 해 보았는가? 봄이 오는 비치미의 언덕길을 황홀한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는가? 비치미 가을 색 들꽃들이 정겹다. 특히 한라부추가 많은 데 하얀 부추 꽃과는 달리 더 가늘고 앙증맞다. 작은 보랏빛 진주들이 모여 다발을 이룬다. 보랏빛 당잔대는 수풀 속에 가는 목을 내밀고 꽃 피운다. 송당 아래쪽 오롬들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애들이다. 이 가을, 무릎까지 차오르는 스크렁을 헤치고 비치미의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스크렁은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문희주의 ‘오롬이야기 35회차’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참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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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20-10-23 10:31:29
비치미가 비탈진 오롬이라는 어휘에 대한 이야기는 국어학적 고찰이군요. 교수님의 글은 어휘학에 버금가군요! 제주말, 국어 연구의 새로운 개척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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