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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26) 서귀포에는 내가
[양순진의 시의 정원](26) 서귀포에는 내가
  • 양순진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8.17 2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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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철 시인
▲ 나기철 시인 @뉴스라인제주

서귀포에는 내가

나기철

서귀포에는 내가
달맞이꽃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다
바다 남빛 물결에
피는 꽃
수백송이 흩으려 놓고
자지러지다가도
정작은 수줍은 달맞이꽃이
되고 싶은,

서귀포에는 내가
휘파람새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다
이젠 반쪽의 자리가 비어도
슬프지 않고
아침 식탁에 수저가 한 벌이어도
외롭지 않다고
잠시 휘파람새가 되어 보는,

서귀포에는 내가
삼매봉이라 부르는 여자가 있다
어느 날 찾아가
시와 그림을 보고
한 바퀴 돌아 내려와
새섬 앞 통통배 소리처럼
떠내려가는 나를
잡아주던
그 봉우리 같은,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제주문학을 논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시인이 있다. 서울에서 출생하였지만 열두 살에 제주로 와서 제주인보다 더 제주인답게 제주인으로, 제주시인으로 살고 있는 나기철 시인!
  그가 제주로 이주 온 건 운명인지도 모른다. 가장 서정적인 섬 제주에서 가장 서정적인 시인으로 거듭난 지금, 여섯 편의 시집을 내고 그는 아직도 문학소년의 감성으로 시의 줄기를 이어가고 있다.

  국어 교사를 퇴직한 후, 시집 <지금도 낭낭히>로 충남 공주시가 지원하는 제 5회 풀꽃문학상을 수상하셨고, 연이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보급 사업도서로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또한 창원시에서 열린 김달진 문학관 강연에도 초청받아 멋진 강연을 한다.
  현실의 옷을 벗자, 대기만성형 인간처럼  예술의 득템이 이어진다.

  그의 시적 정서는 전통적인 서정풍이다. 즉 자연에 감정이입하여 그리움을 독백처럼 토로하는 고백시 형식이다. 어떤 시든 화자의 내면이 시어 사이 사이에 응축되어 있으며 대부분 짧다. 그래서 '작은 詩앗 채송화' 동인 활동으로 긍정적이며 모든 이가 좋아하고 누구나 공감되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 시는 오래전에 쓴 시이고 다른 시에 비해 길지만 서귀포를 배경으로 한 그의 생활상, 내면의 리듬, 자연의 도취성 등 은유가 뛰어난 작품이다. 몇 번 낭송해도 질리지 않는 내용과 정서로 모든 이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서귀포는 누구나 동경하는 지역이다. 제주에 살면서도 그립고 아련하고 발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곳이다. 섶섬, 문섬, 범섬, 새섬, 천지연, 정방폭포, 이중섭 미술관, 쇠소깍, 예술의 전당, 삼매봉, 삼매봉 도서관, 기당미술관 등등 자연과 예술이 함께 숨쉬는 보물의 도시, 문학의 발상지다.

  화자는 그 많은 대상 중 달맞이꽃, 휘파람새, 삼매봉으로 응축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의인화하여 각각 '달맞이꽃이라 부르는 여자, 휘파람새라 불리는 여자, 삼배봉이라 불리는 여자'라는 낭만적 요소를 가미한다.

  사실, 시인들은 사람보다 자연을 더 우상시 하고 종교화 하고 더 의지한다. 사람과의 사랑은 쉽게 변하고 쉽게 이별하기에 그 슬픔의 강도를 이겨내기엔 나약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 시인도 여자라고 대응하고 있지만 자연 그 자체를 노래하고 있다. 어쩌면 이별을 겪을 때 달맞이꽃에게서, 휘파람새에게서, 삼매봉에게서 위안받았을 것 같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달맞이꽃은, 휘파람새는, 삼매봉은 여자이면서 자신을 구제해준 자연물이며 더 나아가 화자의 이상향일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거나 나태주의 '풀꽃'과 같은 이미지로 모든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초월한 초감각 대상물인 것이다.

  나기철 시인은 열정적으로 제주의 구석 구석을 걷고, 열정적으로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열정적으로 술을 사랑한다. 그것이 그를 지탱하는 힘이고 시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며 남아있는 생의 은밀한 지도다. 자연 없이는, 제주 없이는, 문학 없이는, 그도 없다. 걷고, 쓰고, 문학 강연하고, 침묵한다.

그가 추구하는 시의 사랑법은 서귀포와 닮았다. 길 나서면 맞닿는 모든 것이 그대로 시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 두보나 이백, 혹은 도연명처럼.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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