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3 14:02 (화)
2020영주신춘 한영미(시), 허창순(시조), 이상수(수필)씨 당선
2020영주신춘 한영미(시), 허창순(시조), 이상수(수필)씨 당선
  • 유태복 기자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1.01 02: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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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일보사 1일 제13회 2020영주신춘문예 당선작 선정 발표
전국(해외)에서 총 2691편(시 1563, 시조 653, 수필 525) 응모
오는 2월22일 오후3시 제주도의회 도민의방에서 시상식 개최
제13회 2020영주신춘문예 당선자(사진왼쪽부터) 한영미(시), 허창순(시조), 이상수(수필부문)씨
▲ 제13회 2020영주신춘문예 당선자(사진왼쪽부터) 한영미(시), 허창순(시조), 이상수(수필부문)씨 @뉴스라인제주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영주일보사’가 인터넷 신문사상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제13회 2020 영주신춘문예’ 당선작이 선정, 발표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지는 영주신춘문예의 시부문 당선작은 한영미(서울시 영등포구)씨의 ‘객공’이 선정됐다. 시조당선작은 허창순(전북 익산시)씨의 ‘야간비행’이 결정됐다. 수필부문 당선작은 이상수(울산시 북구)씨의 ‘황동나비경첩’이 선정됐다.

응모작은 총 2691편(시 1563편, 수필 653편, 시조 525편)이며, 시상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추후 당선자들에게 개별적으로 공지할 예정이다.

당선작가에게는 1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인터넷신문 ‘영주일보’의 상패가 수여된다.

이번 제13회 2020영주신춘문예 본심은 시부문 김성주 시인, 시조부문에는 김영란 시조시인, 수필부문은 김순신 수필가가 심사했다.

한편, 제13회 2020영주신춘문예 시상식은 2월22일(토)오후 3시 제주시 연동 소재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실시할 예정이다.

[시 당선작]

객공(客工)

-한영미-

재봉틀 소리가 창신동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담장이 막다른 대문을 맞춰 다리면
원단 묶음 실은 오토바이가 주름을 잡았다
스팀다리미 수증기 속으로
희망도 샘플이 되던 겨울

어린 객공은 노루발을 구르다 손끝에 한 점
핏방울을 틔우곤 했다 짧은 비명이
짓무른 패턴에 스미면,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이었다
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붕대처럼 동여맨 구름

자수(刺繡)의 밤하늘은 그녀의 눈물을 진열한 쇼핑센터가 아닐까
화려하게 화려하게
너무나 눈이 부셔서

쪽가위처럼 날카로운 바람에
이따금 실밥처럼 잘려나가는 유성을 보았다

한영미씨(시부문 당선자)
▲ 한영미씨(시부문 당선자) @뉴스라인제주

[당선 소감]

세상을 돌리는 동력은 고단한 일손들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유성처럼 끝내 져버리기도 하지만 그들로 인해 세상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울 수도 있었음을.

시 한 편을 써 내려가기 위해 변변한 제목도 없이 무수히 버려졌던 미완성의 시편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쌓여 이 순간이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늘 허기를 재우지 못해 갈급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물이 두려우면서도 바다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 닿지도 못하는 걸음엔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진하게 배어있었습니다. 늘 그 언저리를 돌며 끄적였습니다.

詩는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제게 숨통이 되어주기도 하고, 깊어질수록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 되기도 했습니다.

기다림의 골목이 길었던 탓인지 당선 통보가 기뻤습니다.

아득한 길 위에 표지 하나 만난 것처럼 다리에 단단한 힘을 얻습니다.

지친 누군가가 올려다볼 밤하늘에 자수를 놓듯이 앞으로도 한 땀 한 땀 혼신을 다해 시를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영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시안을 넓혀주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님들과 윤성택 시인께도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딸의 시를 읽고 필사하길 즐기시는, 투병 중인 친정어머니께 좋은 선물이 되리란 생각입니다.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인 가족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약력

서울 출생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김성주시인
▲ 김성주시인 @뉴스라인제주

[시부문 심사평]

#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전국에서 응모된 편수가 천 편을 넘었다. 시집은 팔리지 않는데,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 씁쓸하다.

예심 본심을 거쳐 세 사람의 시가 결심에 올라왔다. 정옥희 님의 ‘아버지의 의족’ 외 2편, 전진욱 님의 ‘빗살무늬 고3’ 외 2편, 한영미 님의 ‘객공’ 외 3편이다.

정옥희 님의 ‘아버지의 의족’은 불편한 몸으로 가족들을 위해서 당당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에 대해서 담담히 써 내려간 수작이었다. 걸리는 부분은 다른 2편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연결어미의 사용을 자제했으면 좋았다.

전진욱 님의 ‘빗살무늬 고3’은 선 자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는 재기 넘치는 시였다. ‘블루계열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딸’이며, ‘빗살무늬는 참 솔직한 것 같아/알잖아, 애써 단속해도 시험만 보면/그 무늬, 지천으로 나댄다는 거’ 같은 표현.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불필요한 감정을 쏟아내고 말았다.

한영미 님의 ‘객공’ 외 3편은 고른 역량을 보여주고 있어 신뢰가 갔다. 어린 객공의 작업을 떠올리며,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밤하늘 별자리를 이었다/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기시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객관적 거리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좋았다.

굳이 주문한다면,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그리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는 문운을 빈다. [대표집필 김성주 시인]

[시조 당선작]

야간비행*
-김용균 어머니 생각

-허창순-

아득한 지평 어디 돌아오지 못할 비행(飛行)
희미한 손전등에 온몸을 의지했던
네 죄는 비정규직이다. 외주의 울에 갇힌

조종간 움켜쥐고 태풍을 건너던 너
관절이 부러지도록 날개를 저어가도
불 꺼진 관제탑에선 끝내 말이 없었다지

낙탄 속 죽지 아래 뜯지 못한 컵라면
부어오른 네 눈앞엔 거짓말들 나뒹굴고
수첩 속 빽빽했던 하루 생떼 같은 내 어린것

날개 다시 반짝 털고 하늘을 날자꾸나
사람만 있는 세상 너라는 별로 떠라
땅에서 못난 이 어미 네 법의 불을 켜마.

*생텍쥐페리 소설, 안전을 무시하고 야간비행 감행

허창순씨(시조부문 당선자)
▲ 허창순씨(시조부문 당선자) @뉴스라인제주

[당선 소감]

손뜨개 코 빠진 자리 메우는 그 치열했던 시간이 따뜻한 치유의 시간이었음에 감사합니다.

선택의 기회도 없이 쥐어진 숟가락으로 비포장 뿌연 먼지 길 위에서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인 우리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소통하고 누군가의 희망의 章이 된다면 기꺼이 그곳에서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훈훈한 밥상머리에 앉아보렵니다.

중학교 때 신문사 주최 시가 당선된 게 꿈의 시작이었는지 안으로만 삭이던 응어리들이 쌓이며 늘 뭔가 써야겠다는 타는 목마름에 단비 같은 길을 열어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조를 처음 가르쳐 주신 양점숙 선생님의 지도와 격려 속에서 경기대 한류문화대학원 시조창작학과에서의 이지엽 지도교수님의 체계적인 심화 지도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지혜, 지수, 병용 그리고 무한한 글감을 준 든든한 남편과 기쁨을 나누며 마지막 순간에도 아멘으로 떠난 엄마를 주신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경럭

전북 익산 출생, 1960년생
경기대 한류문화대학원 시조창작학과 재학
제11회 전국 가람시조백일장 장원

김영란 시조시인
▲ 김영란 시조시인 @뉴스라인제주

[시조작품 심사평]

#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약자를 감싸 안으려는 따스함과 긍정의 힘

전국에서 정성스레 보내온 500여 편의 응모작품들을 살폈다. 정형시조의 기본에서 어긋난 작품들은 우선 제외 했다. 1차로 걸러낸 작품 중에서 너무 관념적이거나 식상한 고어 투의 작품들을 다시 내려놓았다. 김정애 문혜영 정두섭 허창순씨의 작품이 남았다.

김정애씨의 작품은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실력이 돋보이고 제목에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으나 상투적인 표현이 많아 신선함이 부족했다. 문헤영씨의 경우는 사유의 깊이나 주제를 이끌어가는 힘은 있었지만 음보가 가끔씩 불안하고, 시조 가락의 자연스러움이 아쉬웠다. 정두섭씨는 전반적으로 매끄럽고 언어를 부릴 줄 아는 기교가 뛰어났다. 현대시조의 특징을 잘 살려 옷을 멋스럽게 입은 점도 매력적이고 읽을수록 말맛도 있었지만 조금 가벼운 느낌이 났다. 허창순씨의 작품은 지나친 수사적 기교도 없고 소재 펼치는 방식이나 시상 전개가 자연스럽고 마지막 수까지 이끌어가는 힘도 좋았다.

하나하나 작품을 교차 비교하면서 한참을 고민하다 최종 허창순씨의 ‘야간비행’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약자를 감싸 안으려는 따스함과 긍정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2019년 대한민국에선 매일 평균 3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직업병까지 합한다면 하루 평균 5~6명의 노동자가 사망한다. 그 외 알려지지 않은 사례까지 더한다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50년이 다 되어가지만무엇이 달라졌을까? 고故 김용균군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누군가 죽어야 안전해지는 나라가 아닌, 일하고 싶은 사람은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나라가 되길 희망한다.

당선자에게는 아낌없는 축하인사를 보낸다. 더불어 아쉽게 탈락하신 응모자들께는 용기 잃지 마시고 재도전 하시라고 전하고 싶다. [대표집필 김영란 시인]

[수필부문 당선작]

황동나비경첩

-이상수-

화초장 위에 황동나비가 고요히 앉아있다. 흡밀吸密이라도 하듯 미동이 없다. 철심鐵心이 박힌 나비의 반쪽은 몸판에, 다른 쪽은 문짝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황금빛 날개가 팔랑거린다.

친정 안방에 놓인 화초장은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왔다. 두 칸짜리 문판에 단아하게 매화가 그려져 있고 황동나비 세 마리가 돋을새김 되어있다. 안쪽엔 해충의 침입을 막으려 한지를 덧발랐다. 위 칸엔 모시적삼을 비롯해 두루마기와 유건이 걸리고, 아래 칸엔 치마저고리며 처녀 때 손수 수놓은 베갯잇이 포개져 있다.

친정 부모님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육십 년 전이었다. 열다섯에 가장이 되어 책임감 강한 아버지와 놀기 좋아하던 철없는 막내딸 어머니는 초례청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엔 으레 연애 기간을 갖지 못한 동갑내기 부부의 성격은 판이했다. 아버지는 섬세하며 꼼꼼했고 어머니는 대범하고 쾌활했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아버지와 싫증이 나면 바로 그만두는 어머니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두 분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달랐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편이었고 아버지는 몸보다 머리가 부지런했다. 아버지가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호미를 들고 논밭으로 내달렸다. 어머니가 보기에 아버지는 지나치게 굼떠 보이고 아버지가 보기에 어머니는 너무 조급해 보였다. 농촌에서 몸을 쓰지 않는 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어 식구들을 편안하게 해주겠다며 대처로 나가 옷가게를 차렸다. 머릿속으로 셈해 본 이익은 컸겠지만 날이 갈수록 손해를 보게 되었다. 한 번 시작한 일이라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다급히 논밭을 팔아 그 손해를 메우려 했다. 그럴수록 밑 빠진 독처럼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머니가 눈물로 아버지를 말렸지만 본전 생각은 아버지를 깊숙한 늪 속으로 끌어당겼다. 결국 마지막 남은 땅마저 넘기려하자 논바닥에 드러누웠다. 차가운 비는 어머니의 몸을 파고들었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 마음에 파고들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우리를 보더니 결국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사업에 대한 아버지의 꿈은 쉽사리 접히지 않았다. 어느 해,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땅을 세내어 시멘트 블록 공장을 차렸다. 건물 한 채 없고 직원은 달랑 어머니뿐이라 딱히 공장이랄 것도 없었다.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머니는 혼자서 젖은 블록을 나르고 있었다. 갓 찍어낸 블록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귀퉁이가 무너져 쓸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어머니의 두 손에 들린 것은 젖은 블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업인 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미수금을 거두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사고로 몸을 다쳐 일 년도 못 넘기고 공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농부의 삶으로 돌아왔다.

육십여 년, 온갖 풍상을 겪은 화초장에는 세월의 더께가 앉아있다. 문짝은 헐거워지고 나비는 녹이 슬어 빛이 바랬다. 군데군데 갈라진 틈을 메운 흔적이 우툴두툴하다.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쓸쓸함이 묻어난다. 한사코 밖으로만 떠돌던 아버지와 그걸 말리려던 어머니의 시간이 아릿하게 전해져온다.

신혼 때 우리는 아귀가 잘 맞았다. 언제나 그러리라 의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나의 관계는 헐거워지고 말았다. 갑자기 찾아온 실직과 그로 인한 어려움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쌓인 피로로 집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고 실적 때문에 괜스레 짜증을 부린 적도 있었다. 아귀가 잘 맞지 않고 자꾸 삐거덕거렸다.

그즈음이었을까, 친정집 윗목에 묵묵히 앉아있는 화초장이 새삼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전에는 낡고 색이 바래 별로 대수롭잖게 보았다. 친정에 들를 때마다 하도 낡아서 새것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며 괜히 어머니를 핀잔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어릴 적, 잠결에 무슨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면 어머니가 화초장에 기대앉아 있곤 했다. 아버지와 고성이 오간 날이었을 것이다. 입으로는 무언가를 되뇌며 화초장을 연거푸 문지르고 있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 같아 보여 엄숙하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면 경첩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고 어머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도시락을 쌌다.

여닫는 문은 물론이고 안경다리를 접었다 펴거나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데도 경첩이 쓰인다. 만약 그것들이 풀이나 노끈으로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쉽게 망가질 것인가. 사교댄스에서 회전하는 축을 어느 한쪽 발끝에 두고 체중을 옮기면서 회전하는 것도 경첩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것은 모두 경첩이라 할 수 있겠다.

반백 년을 함께 산 친정 부모는 이제 서로가 단단히 연결되는 방법을 안다. 헐거워진 화초장 문짝처럼 어느 한쪽이 떨어져 나가려 할 때 다른 한쪽은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안정된 가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벌였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절망도 했고,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서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버지를 잡아주었다.

그동안 밖으로 나돌며 나는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탓에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적응하는 동안 온 힘을 쏟았다. 그만큼 집안일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땟거리며 아이들 챙기는 일까지 도맡아 했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변화를 싫어하고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어질러진 집안을 견디고 나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늦은 귀가를 할 때도 남편은 반갑게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헐거워지려 할 때마다 어머니가 붙들어 주었고 내가 돈을 번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돌 때 붙들어준 것은 남편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경첩이 되어주었기에 화초장처럼 든든하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기와가루를 가져와 나비의 날개를 닦는다. 세 마리 황동나비는 여전히 단단하게 문짝을 붙잡고 있었다. 녹슬어 있던 황동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매화나무 위에 앉았다간 팔랑팔랑 안방을 날아다닌다. 나비가 날아간 자리마다 매화향이 가득 퍼진다.

이상수씨(수필부문 당선자)
▲ 이상수씨(수필부문 당선자) @뉴스라인제주

[당선소감]

초겨울 들판에 검은 천이 일렁이고 있었다. 천 자락은 바람을 타고 하늘로, 다시 아슬아슬 땅바닥에 닿을 듯 오르내렸다. 자세히 보니 이맘때면 늘 찾아오는 까마귀 떼의 군무였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춤사위를 보고 있자니 내 안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이 넘실거렸다. 그러다 문득, 기쁜 소식을 들었다.

수필을 만난 지 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나간 일을 써놓고 들여다보면 일기 같았고 머리로 이끌어낸 글은 논설문 같았다. 감정의 힘과 삶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후에야 비로소 피기 시작하는 게 수필이라면 나는 이제 가지 속에 작은 꽃봉오리 하나쯤 숨겨두었을까. 어쩌면 활짝 핀 모습은 생전에 볼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희망 하나쯤 갖고 쓰다보면 작은 꽃잎 몇 개는 펼치기도 하리라.

부족한 글 뽑아주신 영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세계를 향해 마음껏 타고 오르도록 지지대가 되어주는 가족에게 사랑을 보낸다. 늘 응원을 보내는 벗들의 이름에도 애정을 담는다.

*약력

경주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8년 동서문학 동상 수상
2019년 신라문학대상
동서문학회원

김순신 수필가
▲ 김순신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수필부문 심사평]

#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은 깊이가 있고 격이 다르다.

이번 영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공모에서 백 서른 한 분이 오 백 이십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보내왔다. 세 편에서부터 무려 아홉 편을 보내온 분도 있었다. 응모자 모두가 수필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품고 있음이다.

수필은 작가가 바라본 그 어떤 것(소재)에 대하여 어떻게 사유하고, 해석하고,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글이 달라질 수 있다. 표현 방식도 다양하다. 그만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보편성이라는 것이 녹아있어야 한다. 즉 공감을 불러오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촉수가 있어야 함이다. 성찰이나 관조가 없으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오랜 성찰을 통해 나온 글은 깊이가 있고 격이 다르다.

우선 수필로서의 요건을 생각하며 심사위원들은 우수작 몇 편을 선정하였다. 김서연 님의 ‘배냇저고리’, 강미란 님의 ‘합방(合邦)’, 김장배 님의 ‘군새’, ‘꽁뚜뱅이’, 김경아 님의 ‘페이지터너’, 서민교 님의 ‘에밀레’, 김애자 님의 ‘양반탈’, 이성아 님의 ‘편지’, ‘이어폰’, 이상수 님의 ‘도린자기’, ‘황동나비경첩’이다.

한 편만 선정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이성아 님과 이상수 님으로 좁혀졌다. 이성아 님의 ‘이어폰’은 늘 이어폰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이어폰을 두고 출근을 하면서 타인을 향해 귀를 막았던 자신을 성찰하고 있는 글이다. 이상수 님의 ‘ 황동나비경첩’은 육십 년 전 부모님이 쓰던 화초장의 경첩을 깊이있게 관조하여 가정을 지탱하는 것은 서로 경첩과 같은 역할을 해온 누군가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두 작품 모두 소재를 통해 주제 전달에는 성공했으나, ‘황동나비경첩’이 문장의 함축성과 문체의 간결성에서 부족함이 없어 최종 선정하였다.

최종 선정되신 분께 축하를 드리며,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도 그동안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대표집필 김순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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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천 2020-01-01 16:29:01
당선이 되신 분들은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투고를 하셨음에도 낙선하신 분들은 낙담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에 저 자리에 당선 되실 희망을 잊지 마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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