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6 07:41 (금)
제7회 제주4.3평화문학상 김병심 시인의 시에 부쳐
제7회 제주4.3평화문학상 김병심 시인의 시에 부쳐
  • 양대영 기자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9.07.02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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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시인은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눈 살 때의 일

사월 볕 간잔지런한 색달리 천서동. 중문리 섯단마을로 도시락 싸고 오솔길 걷기. 늦여름 삼경에 내리던 동광 삼밧구석의 비거스렁이. 세 살 때 이른 아침 덜 깬 잠에 보았던 안덕면 상천리 비지남흘 뒤뜰의 애기 동백꽃, 동경에서 공부하고 온 옆집 오빠가 들려준 데미안이 씽클레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남원면 한남리 빌레가름. 갓 따낸 첫물 든 옥수수의 냄새를 맡았던 신흥리의 물도왓. 친정집에서 쌔근거리면서 자는 아가의 나비잠, 던덕모루. 예쁜 누이에게 서툴게 고백하던 아홉밧 웃뜨르 삼촌. 백석이 나타샤와 함께 살았을 것 같은 가시리 새가름의 설원. 어머니가 끓여주던 된장국을 이방인인 그이가 끓여주던 한경면 조수리 근처. 매화차의 아리다는 맛을 사내의 순정이라고 가르쳐준 한경면 금악리 웃동네. 옛집에서 바라보던 남쪽 보리밭의 눈 내리는 돌담을 가졌던 성산면 고성리의 줴영밧. 명월리 빌레못으로 들어가는 순례자의 땀범벅이 된 큰아들. 해산하고 몸조리도 못 하고 물질하러 간 아내를 묻은 화북리 곤을동. 친어머니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마저 내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애월읍 봉성, 어도리. 이른 아침 골목길의 소테우리가 어러렁~ 메아리만 남긴 애월면 어음리 동돌궤기. 지슬 껍데기 먹고 보리 볶아 먹던 누이가 탈 나서 돌담 하나 못 넘던 애월면 소길리 원동. 고성리 웃가름에 있던 외가의 초가집에서 먹던 감자. 동광 무등이왓 큰 넓궤 가까이 부지갱이꽃으로 소똥 말똥 헤집으며 밥 짓던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 깨어진 쪽박이란 뜻인 함박동, 성공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 그곳에서 태어나 삼촌들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던 소설가. 초여름 당신과 손잡고 바라보던 가파도와 마라도, 알뜨르까지의 밤배. 지금까지"폭삭 속아수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제주 삼촌들과 조케들, 잃어버린 마을.

위의 시는 제7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김병심 시인의 ‘눈 살 때의 일’이다.

‘눈 살 때의 일은’은 제주말로 ‘눈이 맑을 때의 일’ 혹은 ‘정신이 맑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제주도 사계리에서 태어난 김병심 시인은 20년 넘게 시를 써오며 8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전국 최고의 상금을 걸고 공모하는 제주4.3평화문학상에서 이 시는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국과 해외에서 200명의 응모자들은 2031편의 시를 응모했다.

이 시는 2031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시다.

다섯 분의 예심 심사위원과 세 분의 본심 심사위원과 운영위원회와 운영위원장인 현기영 소설가를 합치면 열 분은 훨씬 넘는 분들의 노고와 심사숙고가 분명 들어갔을 것이다.

이 수상시의 많은 부분들은 제주의 마을이나 지명에 의존하고 있다.

24개의 장소와 21개의 문장과 21개의 마침표와 5개의 쉼표가 나온다. 큰 마침표로 따온 한 구절도 있다.

수식어와 피수식어로만 가득한 한 편의 시를 마주했다, 단순한 문장의 패턴을 나열하면서 행을 늘여가는 것은 사실 LTE 급으로 시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이다.

물론 이 시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우리말이 있다.

‘간잔지런한’이나 ‘비거스렁이’는 현대를 살면서 마주치기 쉽지 않은 단어들이다.

모국어에서는 어머니의 향기와 고향의 냄새가 난다. 시인은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간잔지런하다’는 ‘졸리거나 술에 취해 위아래의 눈시울이 맞닿을 듯이 가느다랗다’라는 의미 에서 왔다. ‘비거스렁이’는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짐’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첫물’이란 ‘맏물의 비표준어로서 푸성귀나 해산물, 또는 곡식이나 과일 등에서 그 해에 맨 먼저 거두어들이거나 생산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말로 쓴 시를 읽으며 모국어로 여행을 한다.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향그러운 말의 고향으로 따라 나선다. 간잔지런한 사월의 볕 속을 걷다가 비거스렁이를 만나기도 하고 첫물 든 옥수수 냄새도 맡는다. 살아있음으로 느낀다.

하지만 2031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이 시에는 오류가 하나도 아닌 둘이나 들어 있다.

하나는 지명표기 오류이며 또, 하나는 쪽박과 함박을 구분 못하는 모국어의 오류이다.

이 시 속에 ‘매화차의 아리다는 맛을 사내의 순정이라고 가르쳐준 한경면 금악리 웃동네’라는 부분이 있다. 사실 ‘한경면 금악리’는 제주도에 없는 지명이다. 탐라국 이래 한경면은 단 한 번도 리소재지로 금악리를 가져본 적이 없다. 한경면은 제주에서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이다. 한경면 웃동네라고 하면 청수리나 저지리를 이를 것이다. 금악리는 한림읍에 속해 있다. 금악리는 양돈축사가 많아 분뇨냄새로 골치를 앓고 있는 마을이다, 한경면은 돈사냄새가 나지 않는다.

제주 사계리가 고향인 김병심 시인은 바로 옆 동네인 한경면도 모르고 4.3의 잃어버린 마을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다른 하나는 ‘깨어진 쪽박이란 뜻인 함박동, 성공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 그곳에서 태어나 삼촌들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던 소설가’에서 보이는 모국어의 오류이다. 오류를 벗어나려면 ‘깨어진 쪽박 같다던 함박동’ 이나 ‘깨어진 쪽박 닮았던 함박동’으로 고쳐 쓸 수 있겠다.

시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직유법으로 말이다.

쪽박과 함박은 다르다. 태생이 다르고 용도가 다르다. 집에서 함께 숨 쉬었던 일상용품이다.

쪽박은 박에서 나온다.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인 박을 8월에서 10월에 채취하여 박을 타고 속을 파내고 삶아서 말린다. 플라스틱 바가지기 나오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바가지를 만들어서 썼다. 쪽박은 작은 바가지를 말하는데 옛날에 거지들이 이걸 차고 다녀서 쪽박을 차다는 말은 거지가 된다는 뜻이 되었다. 그리고 쪽박을 깨다는 일을 그르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함박은 나무에서 나온다. 사용목재는 소나무가 많았다. 음식을 씻거나 버무리는 역할을 할 때 필요한 용기이며, 음식을 담아 보관하는 데도 크게 사용하는 그릇이다. 대체로 큰 통나무를 오랫동안 흐르는 물에 담갔다가 건조시켜 다듬어 만들기 때문에 좀처럼 터지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시인은 ‘삼촌들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는 소설가’ 즉 현기영 소설가를 이야기한다. 현기영 소설가는 제주의 4.3을 소재로 ‘순이삼촌’을 쓴 장본인이다.

함박동이 고향인 현기영 소설가는 이 수상작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지 의심스럽다. 고향의 지형을 따라 지어진 함박동을 쪽박이라고 말하는 김병심 시인의 시를 수상작으로 냈다.

옆구리에 찰 수도 없는 함박을 꿰찬 이 어불성설의 상황을 뭐라고 그들은 해명할 수 있을까.

김병심 시인은 이 문장 안에서 정확한 띄어쓰기를 했다. ‘수밖에’는 ‘수 밖에’로 자주 착각을 일으키는 띄어쓰기다. 이 부분을 살펴보면 김병심 시인은 퇴고를 했음을 미루어 짐작된다.

그런데도 모국어를 잘못 쓴 부분은 퇴고를 하지 못했다. 시인은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모국어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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