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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영 칼럼](49)황무지(장기)
[양대영 칼럼](49)황무지(장기)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8.18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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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장기)

- T. S. 엘리엇-

Ⅱ. 장기(A GAME OF CHESS) 1)

여자가 앉은 의자는 눈부신 왕좌와도 같이
대리석 위에 빛나고, 거기 주렁주렁 열린
포도덩굴을 조각하여 그 사이로
금빛 큐피드가 내다보고 있는
(또 하나는 날개로 눈을 가리운)
두 기둥 사이에 QECUWLS 거울은
칠지촉대(七枝燭臺)의 불꽃을 이중으로 비쳐내면서
공단 함에서 풍성히 쏟아져 나온
여자의 보석의 광채와 마주치어 테이블에 반사하고,
마개를 뺀 상아, 색유리의 향수병에는
이상한 합성 향료와
향유, 가루분, 물분이 들어있어-
감각은 향기에 괴롭고, 어지럽고, 취하고
창으로 불어드는 산뜻한 바람에
향기는 길게 일렁이는 촛불을 키우면서
연기를 천정까지 떠오르게 하여
그 위에 아로새긴 무늬 위에 설레었다.
동분(銅粉)을 뿌린 커다란 바다나무는
난로 옆 색깔 있는 대리석 기둥 사이에서 초록빛, 유자빛으로 피어올라
거기 조각된 해돈(海豚)이 그 슬픈 광선속에서 헤엄쳤다.
고풍의 노상(爐上) 위에는
창 밖으로 숲 경치를 내다보듯,
무지한 왕에게 그렇게도 무지하게 욕을 보고 나이팅게일이 된
필로멜라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림 속 나이팅게일의 맑은 목청은
사막을 울리며 여전히 울건만
세상은 여전히 음란하니
더러운 귀에는 그저 “쩍, 쪽‘하고 들릴 뿐이다.
그리고 그 밖에도 시들은 지난날의 그루터기가
벽면에 그려져 있어, 응시하는 초상들은
앞으로 수그리듯 기웃거리며, 에워싼 방안을 고요히 했다.
층층대에 끄으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1) 장기 한 판의 제목은 Thomas Middleton(1570-1627)의 극에 같은 제목이 있지만, 그의 ‘Women Beware Women'을 연상시킨다. 한 여자가 시어머니가 옆방에서 장기를 두는 동안 유혹당하는 이야기와 관련된다. 이는 뒤에서 능욕당한 필로멜라 이야기가 이 테마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필로멜라가 형부인 테레우스왕에게 능욕당하고 혀가 잘리고 결국 나이팅게일로 변한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쩍(Jug), 쩍(Jug)’하는 더러운 소리는 나이팅게일의 소리로, 성교를 암시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불빛 아래 벗겨 내린 여자의 머리칼은
퍼져, 불꽃같이 끝이 서고
말할 듯 타오르다간 또 무서울 만큼 고요해진다.

“오늘밤엔 내 신경이 이상해요. 정말이에요. 가지 마세요.
나에게 이야기를 하세요. 왜 도무지 이야길 하지 않으세요. 하시라니깐.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계셔요? 무엇을 생각해요? 무엇을?
난 도무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없군요. 생각해 보세요.“
나는 생각하노니, 우리 죽은 이가 뼈를 잃은
쥐구멍에 있나 보오.

“저 소리는 무엇이에요?”
도어의 바람소리.2)
“지금 저 소리는 무엇이에요? 바람이 무엇을 한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무르세요? 아무것도 보지 않으세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으세요?
나는 기억하노니
그의 눈은 진주로 변했느니라.
“당신은 살아있는 거예요, 죽은 거예요? 당신 머리 속엔 아무것도 없단 말이에요?”

오오오오 세익스피어식 장단(래그 재즈)3)
그렇게도 맵시 있고
그렇게도 총명한
“나는 이제 무엇을 할까요? 나는 무엇을 해요?”
“나는 이대로 뛰어나가 거리를 걸어 볼 테요,
머릴랑 이렇게 풀어헤친 채, 우리 내일은 무얼 할까요?“
“우리는 두고 두고 무엇을 해요?
열 시엔 더운 물을 쓰고,.
비가 오면 네 시에는 닫혀진 자동차를 타고
그리곤 한 판 장기를 두고 나면,
눈꺼풀 없는 눈을 누르면서 도어의 노크소리를 기다릴 테요.

릴의 남편이 제대했을 때 나는 말했지4)
아주 노골적으로 말했는 걸,
시간이 되었습니다. 빨리 해 주십시오.
이제 엘리트가 돌아오니까 너 몸차림 좀 해.
이빨 박으라고 주고 간 돈 무엇에 썼느냐고

※2)Webster의 ‘The Devil's Law Case(악마의 소송사건)' 3막 2장에 보이는 따온 것으로, 죽은 사람으로 생각한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은 의사가 다른 의사에게 하는 말.
3) 세익스피어의 오델로나 리어왕의 부르짖음. 래그재즈는 제1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유행한 음악.
4) 이후부터 끝까지는 술집에서 두 여자가 혹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하는 대화 내지는 말로 돼 있다.


물어 볼거야, 분명히 주었어, 내가 봤는 걸.
죄다 빼 버리고 릴, 참한 걸로 해 박으우,
그는 분명히 말했어, 난 네 꼴을 차마 볼 수가 없다고.
나도 그래, 정말이라구 했지, 그런데 불쌍한 엘버트를 생각해 봐.
4년동안이나 군대살일 했으니 재미도 보고 싶을거야.
그런데 네가 그래주지 않으면 남이 나설 거라고 했지.
그래하고 릴은 말했어, 그래서 내 말이 과히 틀리지 않을 거라고 해주었지,
그러면 누구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알아 하면서 릴은 나를 노려보았어.
시간이 됐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5)
그것이 싫대도 참을 수는 있다고 주면서,
너는 못 해도 남들이야 골라잡을 수도 있단다고 일러 주었지.
그런데 엘버트가 버리고 가도 말해 주지 않은 탓은 아닐테니까.
그렇게 늙어 뵈는 걸 부끄러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해주었지.
(릴은 겨우 서른 한 살 인데.)
그러나 언짢은 얼굴로 하는 말이 인력으로 못하는 걸 어떡하란 말이야
그것을 지우려고 먹은 환약 때문인걸.
(하긴 벌써 다섯을 낳았는데 막내 조지 땐 줄을 뻔했지.)
약국은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 뒤론 도무지 전 같질 않아.
네가 바로 바라보라는 거야 하고 내가 말했지.
하여튼 엘버트가 가만 두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아이가 낳기 싫은 걸 뭣하러 결혼은 하는 거야, 해 주었지.
서둘러 주십시오. 시간이 됐습니다.
그런데 공일날 엘버트가 돌아왔을 땐 따뜻한 돼지고기를 장만해 놓고
그들은 나를 저녁에 불러 따뜻한 걸 맛보라 했겠지-
시간이 됐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시간이 됐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잘 자요, 빌. 잘 자요, 루. 잘 자렴, 메이. 좋은 꿈 꾸어.
안녕, 잘 가요. 조심들 해.
안녕히 주무십시오 부인네들. 안녕히 주무세요 아씨네들,
안녕히, 안녕히들 주무십시오.6)

※5)바텐더가 문닫을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리는 말.
6)세익스피어의 햄릿 4막 5장에 보이는 미친 오펠리아의 말의 끝 부분을 따 온 것임.

 
‘현대 영시선’(YBM 시사)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황무지는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의 정신적 혼미와 황폐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영주일보의  ‘시가있는 삶의 향기’란을 통해 ‘황무지’ 전편을 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남은 편들에 대하여도 계속 글을 올릴 것이므로 감상하기 바랍니다. 이 기회에 유럽의 사회, 문학을 함께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주를 참고하여 여러 차례 읽으면서 깊이를 느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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