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태우며
-양중해-
낙엽을 태운다.
휴지가 되어버린 이력서에
불을 지핀다.
바삭 바삭 마른 낙엽은
청자빛 연기를 솟구치며
분홍빛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봄의 연한 새싹들의 꿈이
여름 햇볕 아래서 싱싱히 자라더니
꽃으로 피고
향기로 뿜어 오르더니
열매로 맺고
다시 단풍으로 물들더니
이젠 힘이 다진하여
바람이 아니어도 떨어지는 이파리들
오는 저녁, 나는
떨어져 쌓인 낙엽들을 쓸어모아
불을 지핀다.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는
나의 이력서에 불을 지핀다.
타는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너무나 엄숙하기도 하구나.
그래서 시인은 낙엽에서 ‘자연’을 읊고 있다. 진리를 완곡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현곡 양중해는 잘 알려진 가곡 ‘희망의 나라로’의 노랫말을 만든 제주의 시인이다. 평생을 조용히 제길을 걸어온 교육자이다.
시인은 낙엽에서, 자연을, 스스로의 삶을 담담히 관조한다.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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