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22:24 (목)
[양대영 칼럼](43)낙엽을 태우며
[양대영 칼럼](43)낙엽을 태우며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4.12.14 2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낙엽을 태우며

-양중해-

낙엽을 태운다.
휴지가 되어버린 이력서에
불을 지핀다.
바삭 바삭 마른 낙엽은
청자빛 연기를 솟구치며
분홍빛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봄의 연한 새싹들의 꿈이
여름 햇볕 아래서 싱싱히 자라더니
꽃으로 피고
향기로 뿜어 오르더니
열매로 맺고
다시 단풍으로 물들더니
이젠 힘이 다진하여
바람이 아니어도 떨어지는 이파리들

오는 저녁, 나는
떨어져 쌓인 낙엽들을 쓸어모아
불을 지핀다.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는
나의 이력서에 불을 지핀다.

타는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너무나 엄숙하기도 하구나.

 
낙엽을 쓸어 치워야 할 때이다. 휴지가 되어버린 낙엽, 아무 쓸모가 없어진 낙엽, 바람이 아니어도 떨어져야 할 낙엽이다. 그런 낙엽이 청자빛 연기를 내며 분홍빛으로 활활 타오른다. 타는 모습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전해줘, 그저 아름답고 장엄하다고 단순화해버린다. 봄의 연한 새싹과 꿈, 꽃, 향기로운 열매, 단풍, 힘이 다해 떨어지는 게 낙엽이다. 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순리, 철저한 원칙, 불변의 진리다. 자연이 원칙에서 벗어날 때 대 재앙이 온다. 자연과학은 거의 조그만 오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에서 우주를 움직이는 자연, 곧 순리를 배운다. 그래서 산과 바다를 찾고, ‘자연’을 추구한다. 허지만, 현실은 자연과는 거꾸로 가는 것들이 태반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내버려 둬야 할 것을 취하고, 대부분 지나치거나 미흡한 것들이 현실 사회다. 자연이 현실에 던지는 것들은 이런 것들에 극명히 대비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시인은 낙엽에서 ‘자연’을 읊고 있다. 진리를 완곡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현곡 양중해는 잘 알려진 가곡 ‘희망의 나라로’의 노랫말을 만든 제주의 시인이다. 평생을 조용히 제길을 걸어온 교육자이다.

시인은 낙엽에서, 자연을, 스스로의 삶을 담담히 관조한다. 슬퍼할 것도 기뻐할 것도 없다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