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5 07:20 (목)
강경우 칼럼(7)「탁란(托卵)의 문장, 그 치명적 오류에 대한 독백」에 대하여.
강경우 칼럼(7)「탁란(托卵)의 문장, 그 치명적 오류에 대한 독백」에 대하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4.02.26 11:2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강경우 시인

-글, 강경우-

가갸거겨 하던 날부터
꽁무니 뒤로 하얗게 밀려나오는 허물
편백나무 속, 검은 심 끝에서 수음의 냄새가 난다
남의 둥지에서
남의 알을 옆으로 밀어내다 묻은 얼룩
부적절한 관념의 행간들을 불살라버리고 갠지스 강을 건넌다
그 강어귀, 마을엔
죽음만 기다렸던 껍질들이 모여 산다
바닥을 기던 무릎과 모서리 닳은 관절의 껍질들, 지금도
거죽만 팔랑거리는 오체투지의 기도 소리는 둥둥
되돌아오지 않는, 찢긴 북소릴 흉내 내며
옷걸이에 걸려있다

변명을 깎아낼수록
몽당연필의 꼭대기에 부풀어 오른 몽당(蒙堂)*
노스님 없는 그 자리, 먼지 폴폴 날리며
연필심의 게으른 증거들만 수북이 쌓여있는 탁란(托卵)의 계절
남의 둥지에 제 새끼를 낳고 기다리는 뻐꾸기,
그 울음처럼 지친 나름의 고해성사들이 흩어져가는 9호선 종점,
사람의 눈보다 짐승의 눈이 더 그리운
무가지無價紙 속, 어제라는 껍질은 서늘하게 식어있다
누군가 의도한 문명의 낯선 경계에서
쌍시옷을 입에 달고
사라진 유리 구두 한 짝을 찾는 문장의 치명적 오류는
by myself
뼈다귀를 감싼 알몸의 소리는
연필과 연필심 그 지루한 사실혼 관계를 부정하고 싶은
덜, 혹은 더 깎아내야 할
검은 내 색깔이었다 어디든, 무엇이든
내 삶의, 짙은 길이 되어야 하므로
-김부회, 「탁란(托卵)의 문장, 그 치명적 오류에 대한 독백」전문.

'나?' 지금, 이 순간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이 몸뚱이와 마음이 과연, 진정! '나'일까? 視·聽·味·嗅·髑의 5감에 더하여 제6감까지 감지할 수 있는 내 몸뚱이는 어떻습니까. 과연 나 혼자만 독차지할 수 있는 물건일까요? 그조차도 내가 아닐 때가 있는 겁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미, 누구의 자식으로 살아야 할 때가 더 많은 것입니다. 하물며 마음이겠습니까? 마음은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과연 그렇게 되던가요? 차츰 나이가 들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옛사람들도 '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가 모인 카오스적인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혼란스럽지요. 책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의 어떤 ‘나’는 천만리를 헤매고 돌아다닙니다. 서울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돌아다니던 그놈이 책을 보던 놈을 밀어내고 똬리를 틉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나’는 딸에게, 어머니에게 달려갑니다. 이젠 그놈이 ‘나’라고 하면서 좁디좁은 머릿속 둥지를 차지하게 됩니다. 개개비인 ‘나’는 어느 것이 내 새끼이고, 어느 것이 뻐꾸기의 새끼인지도 모르면서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면 어떤 나보다 몇 배나 더 커버린, 도저히 나라고 생각할 수 없는 뻐꾸기 새끼가 나를 지배할 때가 있는 겁니다.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정말 나도 싫은 내가 나를 좀먹고 있다는 것조차 대개는 모르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런 놈일수록 뻐꾸기 새끼처럼 훌쩍, 떠나버리면 좋겠지만 내 마음의, 그러한 ‘나’는 웬만해서는 내게서 떠나주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인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美·醜·善·惡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가 내 한 몸에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129,600이란 수는 ‘經世一元의 數’라는 것으로 송나라 소강절 선생의 수리학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우주 자연을 陰陽剛柔의 운행으로 보고, 元會運世, 元을 一이라 하여 1년, 會를 12라 하여 月을 상징하고, 또 運은 360이라 하여 일 년의 날수를, 世를 30년이라 하여, 각각 수를 배정한 것입니다. 陰陽剛柔는 공간성, 元會運世는 시간성입니다. 사람 한 대는 대략 30년, 여기에 일 년의 4,320시간(하루는 12시간)을 곱하면 129,600이라는 수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30년이면 사람 한 대가 바뀌듯 크게 나아가 129,600년이면 우주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시간이라는 말씀인데 황당하기는 합니다. 다만 이 129,600을 사람의 마음에 빗대어 말한 우리의 고전이 있습니다. 즉 忍乃天, 곧 사람이란 우주와 같아서 그 마음이란 것이 129,600의 3승(天·地·人)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면 그 어떤 슈퍼컴퓨터로도 계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게 내 마음인 것입니다. 하니 어느 것이 탁란에 해당하는지는 자신도,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시를 보면 무언가, 잡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
남의 둥지에
제 새끼를 낳고 기다리는 뻐꾸기의
그 울음처럼 지친 고해성사들이 흩어져가는 9호선 종점, 사람의 눈보다
짐승의 눈이 더 그리운 무가지無價紙 속,
어제라는 껍질은 벌써 서늘하게 식어 있다 누군가 의도한 문맹의
낯선 경계에서/

고해성사, 아무리 상대가 신부라고 하지만 신부도 사람이고, 또 그들 집합에서 자주 만나야 할 상대입니다. 하면 무엇이든 비양심적인 소행을 다 드러내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런 형식적인 의식만 지내도 보통은 ‘하나님은 다 아시니까, 다 용서하셨다.’ 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 모습이 우리 마음의 현주소가 아닐까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 그 주위에서 우는 것은 미안해서, 슬퍼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뻐꾸기는 숙명적으로 그리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강변일 수도 있고, 또 새로 나올 새끼에게 제 울음소리를 각인시키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신문의 정치논리처럼 말입니다. 소위 여론몰이로 사람 하나 살리고 죽이는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그런 현장 속에서 우리는 고달픈 것입니다.

/
쌍시옷을 입에 달고 사라진
유리 구두 한 짝을 찾고 있는 문장의 치명적 오류는
by myself/

원작자가 무엇을 상징하였는지는 잘 모르나 아마도 쌍시옷이 들어간 말, 씨팔(발), 쌍x, 쌍것, 씨불알 등의 말을 생각해보면 잔뜩 불만을 품고 달아난 어떤 존재(진실, 또는 진리)를 찾아야 하는데, 거기에 자꾸 끼어드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뭘까요? 'by myself' 즉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그것입니다. 나 혼자의 생각이 다 正義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무엇을 이해하기까지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스님이 長座不臥를 십 년 넘도록 했다’고 했을 때, 그 수행의 길은 오로지 혼자서 한 것일까요? 스승에게서 글자를 배우고, 경전을 배우고, 의식을 배우고 하면서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 어느 정도 혼자서 세상의 이치를 가늠하게 될 정도가 되어야 장좌불와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치명적 오류에 빠져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 다음 결구입니다.

/뼈다귀를 감싼 알몸의 소리는
연필나무와 연필심 그 지루한 사실혼 관계를 부정하고 싶은, 긍정하고 싶은
덜, 혹은 더 깎아내야 할 검은, 내 색깔이었다 어디든, 무엇이든
내 삶의, 짙은 길이 되어야 하므로/

이것은 자성의 목소리입니다. 솔직한 성찰이며 자기 고백입니다. 또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왜? 그 어떤 것이든 내 뚜렷한 족적이어야 하므로, 때로는 검은 칼날을 내보여야 하겠지만, 때로는 검은 칼날을 내보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시인 : 강 경우)

◎김부회 시집, 『詩답지 않은 소리』(다시올, 2014)에서 전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miok 2014-02-28 11:49:39
그 어떤 것이든 내 뚜렷한 족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에 숨이 헉 막히는 것은 스스로가 걸리는 것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요즈음은 그 여느때보다 Reflection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그 만큼 제가 내 색깔을 가지기 위해 되지도 않는 노력 따위를 하고 있음입니다.

JAKSO 2014-02-27 23:53:54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쌍시옷을 입에 달고 사라진/ 유리구두 한짝을 찾는 문장의 치명적 오류/ 어찌보면 하룻길이 잃어버린 유리구두 한짝 찾는 기분 들때도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많이 풀렸네예...정말 봄인가 할 정도입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예.....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